[경제 좀먹는 ‘좀비기업’]‘좀비기업 대처’ 美-日의 교훈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선진국들의 사례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본은 적절한 시기에 한계기업들을 솎아내는 데 실패하면서 불황이 더 길어진 반면, 미국은 위기 상황에서 산업 구조조정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하면서 경제 부활에 성공했다.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경기 침체가 찾아오자 일본 정부는 별다른 경제 구조조정 노력 없이 금리 인하, 재정지출 확대 등 인위적인 경기 부양으로 극복하려 했다. 경기 불황의 원인이 인구 고령화와 기업 부채 급증 등 구조적인 문제에 있음을 직시하지 못하고 단기 대책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경제 상황을 오판한 것은 금융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은행들은 부실기업의 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이들의 회복이 시간문제라고 보고 대출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이자를 면제해줬다. 금융회사들이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고 좀비기업들에 신규 대출을 줄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일본 경제가 한참 장기 불황에 빠져든 뒤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 중 금융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의 비중은 버블 붕괴 이전에는 4∼6%였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14% 수준으로 급격히 높아졌다.
반면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게 최근 경기 반등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은 금융회사나 투자은행(IB)들이 각각 수만 명을 감원하며 군살을 뺐고 제조업의 상징과도 같았던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도 법정관리를 시키는 등 한계기업의 대대적인 정리를 단행했다.
당시 미국의 강도 높은 구조개혁은 이후 2, 3년간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떨어진 원인이 됐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주사’를 맞은 덕에 그 후에는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출구전략(금리인상)을 준비할 만큼 튼튼한 경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이 미증유의 통화정책인 양적완화(QE)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발 빠른 구조 개혁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