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화산 일부 자율 휴식년제 훼손 심해지자 지킴이 모임 꾸려… 현장실태 조사 뒤 5년간 관리나서
17일 구자형 봉화산 지킴이 회장(60·왼쪽)이 자연휴식년제 구역으로 들어가려는 한 등산객에게 출입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이달 10일부터 5년간 봉화산에는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도입한 휴식년제가 실시된다. 중랑구 제공
그러나 약 20∼30년 전 근처 신내동 묵동 중화동 상봉동 등지에서 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봉화산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당장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발길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샛길이 생겨났다. 사람들의 발에 짓밟힌 풀과 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다. 산 곳곳에서 토사가 유실되고 새하얀 바윗돌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산사태 위험마저 높아졌다.
17일 오전 봉화산 둘레길에서 만난 구자형 ‘봉화산 지킴이’ 회장(60)은 “이대로 놔두면 우리 동네의 소중한 산이 완전히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고 털어놨다. 20년 동안 신내동에 거주한 구 회장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주민 13명과 함께 올해 1월 말 ‘봉화산 지킴이’ 모임을 꾸렸다. 지킴이들의 1차 목표는 일정 기간 사람의 출입을 막는 ‘자연휴식년제’를 봉화산에 도입하는 것.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2월부터 총 4회에 걸쳐 현장 실태조사와 휴식년제 도입 대상지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자연휴식년제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자치구 제외)가 실태조사 등 관련 절차를 거쳐 지정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연을 즐길 권리나 주변 상권 발전을 침해한다며 일종의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민들이 지정한 봉화산 자연휴식년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자율 규제’에 나섰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중랑구 관계자는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휴식년제를 도입하면 ‘반대’ 목소리가 큰 경우가 다반사”라면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휴식년제를 실시한 건 환경 보전과 개선을 위한 의식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화산 지킴이들은 앞으로도 정기적인 순찰 활동과 휴식년제 시행 구역의 출입통제, 샛길 폐쇄, 청소 및 수목 가꾸기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이 구역에서 휴식년제를 시범 실시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른 훼손 구간에 대해서도 추가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