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겐 지도도 없고 추측과 막다른 골목들만 수두룩하지만, 이보다 나은 곳은 없다.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에레즈 에이든, 장바티스트 미셸·사계절·2015년) 》
“프랑스 학생들이, ‘모나리자’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루브르 박물관’을 가거나 프랑스 학자가 쓴 책을 빼들까요? 아닙니다. 그냥 ‘구글링’을 하죠.”
국내 한 인터넷 포털기업 관계자가 “유럽 문화정책 당국자의 하소연”이라며 들려준 얘기다. 이 당국자는 국내 포털 기업을 방문해 한국이 ‘정보 권력’을 구글에 빼앗기지 않은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에선 “유럽 국가들이 구글의 인터넷 세계 지배력을 줄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처럼 구글에 대항할 만한 인터넷 서비스가 없는 유럽 국가 입장에서는 ‘사이버 세상’의 비중이 커질수록 정치·문화·경제 권력을 구글에 잠식당한다고 느낀다. 이런 구글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이번 소송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구글이 2004년부터 지금까지 ‘디지털화’한 책 3000만 권(구텐베르크 이후 인류가 출간한 책은 총 1억3000만 권) 가운데 800만 권을 활용해 세계인의 언어나 개념 등의 진화를 살피는 두 과학자의 시도를 담고 있다. 그들에게 책 내용을 빅데이터로 바꿀 수 있는 구글은 최상의 실험실이다. 두 과학자의 시도는 도서정보 권력까지 구글이 완전히 차지하게 됐다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이제 구글을 통해서 괴테와 셰익스피어 작품을 낱낱이 분해할 수 있게 됐다. 유럽이 느끼는 공포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