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아베크매거진 에디터
반납할 책이 있었던 4층 자연과학실에는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서둘러 반납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에 3층 어문학실로 내려갔다. 서가에 꽂혀 있는 산문집 두 권 중 더 깨끗해 보이는 것으로 빌렸다. 열람실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열람실을 넓게 둘러봤다. 어디를 가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둘러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 있다. 누가 어떤 책을 읽는지, 누가 졸고 있는지, 누가 통화를 하는지, 누가 킥킥거리는지 볼 때마다 비슷한 듯 다른 풍경이 사람 사는 냄새를 눈으로 가져다준다. 한 주 동안 일하면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내가 모르는 다수의 사람에게 치유 받을 때가 있다. 소박한 기쁨도 잠시. 빌린 책의 표지를 넘기는 순간 연필로 적은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유치하다 이 책.’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잘못 선택했다는 후회스러움에 뛴 가슴이 아니라 양심 없는 낙서에 대한 두근거림이었다. 화가 났다. 도서관의 책에는 각종 표시가 있다. 곳곳에 도장이 찍혀 있고, 앞표지에는 바코드가, 책등에는 서가 번호가 적혀 있다. 그리고 도장에는 책을 소중히 다뤄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낙서는 보란 듯이 도장 아래 적혀 있었다. 필체로 보아하니 어린아이의 흔적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것이 잘못된 행동인지, 아닌지에 대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의 낙서였다. 저명한 작가가 쓴 책이라 할지라도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을 많은 사람이 함께 봐야 하는 책에 적을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에는 음식물을 흘린 자국이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모서리가 살짝 구겨진 것도 있다. 아주 심할 경우에는 한쪽의 전체가 찢긴 것도 있다. 마치 그 책의 다음 대출자는 영원히 없는 것처럼.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내가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인가’까지. 수십 개의 질문들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책은 대출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속도로 읽었고 제시간에 반납했다. 평소 사모하는 작가의 산문집인지라 다음 쪽으로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지만 동시에 술술 읽었다. 내용이 유치하다기보다 삶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에 위안을 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반납하기 직전에 그 낙서는 흔적도 없이 지웠다. 충동적으로 남긴 낙서이길 바라면서, 낙서를 남긴 사람의 양심 없는 마음도 함께 지워지길 바라면서.
이원희 아베크매거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