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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냉기 유지 비밀은 에어포켓-환기구

입력 | 2015-05-20 03:00:00

석빙고의 과학적 원리




곧 여름입니다. 점점 더 얼음을 즐겨 찾겠지요. 지금은 냉장고가 있어 손쉽게 얼음을 구할 수 있지만 옛사람들은 더운 여름 어떻게 얼음을 구했을까요?

서울 용산구에 가면 서빙고동(西氷庫洞), 동빙고동(東氷庫洞)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빙고는 얼음 창고라는 뜻. 그렇다면 이곳에 얼음 창고가 있었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얼음 창고를 돌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탓에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겁니다.

경주 석빙고(1738년) 입구. 오른쪽으로 날개벽이 튀어 나와 있다. 겨울철 찬바람은 이 날개벽에 부딪혀 소용돌이를 일으킨 뒤 석빙고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내부를 차갑게 만들어준다. 경주=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신라 때부터 등장한 빙고

빙고는 신라시대 때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빙고는 경북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1738년), 경북 안동 석빙고(보물 제305호·1737년), 경남 창녕 석빙고(보물 제310호·1742년) 등 6기로, 모두 18세기에 돌로 만든 것입니다.

석빙고는 늦겨울 강에서 얼음을 채취해 저장했다가 여름에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모양은 멀리서 보면 마치 무덤처럼 둥그렇습니다. 내부는 땅을 판 다음 돌로 안쪽 벽을 쌓고 바닥엔 경사진 배수로를 만들었어요. 천장은 아치 모양으로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고 천장에 환기구멍이 두세 개씩 있습니다.

그렇다면 겨울에 채워 넣은 얼음이 한여름까지 어떻게 녹지 않고 견뎠을까요? 그 과정과 원리를 단계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경주 석빙고 내부. 아치형 천장 중간중간에 움푹 파인 공간을 만들어 더운공기를 가두어 놓는다.

○ 내부공간 냉각시키는 날개벽 구조

첫 단계는 얼음 저장에 앞서 겨우내 석빙고 내부를 냉각시키는 과정입니다. 전문가들의 측정에 따르면, 경주 석빙고의 겨울철 내부 온도는 평균 영하 0.5도∼영상 2도. 보통 지하실 내부가 영상 15도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석빙고의 내부는 일반 건물의 지하보다 차갑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석빙고가 이렇게 냉각이 잘되는 것은 석빙고의 탁월한 구조 덕분이에요. 석빙고를 눈여겨보면 출입문 옆에 세로로 튀어나온 날개벽이 있습니다. 겨울에 부는 찬바람은 이 날개벽에 부딪히게 되지요. 부딪히면서 소용돌이로 변한답니다. 소용돌이는 추진력이 있어 더욱 빠르고 힘차게 석빙고 내부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갑니다. 석빙고 내부는 그렇게 해서 겨우내 찬 기운을 유지하게 됩니다. 석빙고 내부는 이런 날개벽 구조를 통해 그 어느 곳보다도 더 차가운 기운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경주 석빙고 외부의 환기구. 내부의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기능을 한다.

○ 찬 기운 유지해주는 에어포켓과 환기구

두 번째 단계는 2월 말경에 얼음을 넣은 뒤 6∼10월의 4∼8개월 동안 차갑게 냉기를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늦겨울에 저장한 얼음은 여름까지 녹지 않아야 합니다. 전혀 녹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내부를 저온으로 유지해 최대한 녹는 속도를 늦춰야 하는 것이지요.

핵심은 석빙고 내부의 찬 기운을 여름까지 유지하는 겁니다.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우선 천장의 구조를 보죠. 화강암 천장은 아치형입니다. 천장은 1∼2m 간격을 두고 너덧 곳이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움푹 들어간 공간은 내부의 더운 공기를 가두었다가 밖으로 빼내는 기능을 하게 되지요. 전문가들은 이를 에어 포켓(air pocket)이라 부릅니다.

얼음을 저장하고 나면 내부 공기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더워질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얼음을 꺼내기 위해 수시로 문을 열고 드나들어야 하니 더더욱 그럴 겁니다. 이 과정에서 더운 공기가 발생하는데 이를 고려한 것이 바로 에어 포켓입니다.

더운 공기는 위로 뜨지요. 그런데 석빙고 내부에서 더운 공기가 위로 뜨는 순간 에어포켓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에 갇힌 공기는 에어포켓 위에 설치된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석빙고 내부는 초여름에도 섭씨 0도 안팎을 유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실험 결과입니다,

○ 외부 열기 막아내는 배수로와 방수층

내부 공기가 조금씩 더워지다 보면 습기와 물이 발생합니다. 습기와 물은 얼음에 치명적이지요. 따라서 재빨리 석빙고 밖으로 빼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석빙고의 바닥에는 약간 경사진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 빗물이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부에 석회와 진흙으로 방수층을 단단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얼음과 벽, 얼음과 천장 틈 사이에는 밀짚과 왕겨, 톱밥 등의 단열재를 채워 외부 열기가 밀려들어오는 것을 차단합니다. 또한 석빙고 바깥에는 열을 막기 위해 잔디를 깔았습니다.

경주 석빙고는 여름에 대비해 얼음을 저장하는 곳이었습니다. 안동의 석빙고는 특산품인 왕실 진상용 빙어를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옵니다. 석빙고는 참 재미있고 매력적입니다. 그 과학적 원리를 하나둘 들여다보면 옛사람들의 과학적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여름 경상도 지역의 석빙고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겁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