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이 끝난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까치밥’은 시골 공동체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매년 급증세를 보이는 귀농·귀촌인(2014년 4만4586가구) 가운데는 이런 시골 까치밥(인정과 배려)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막연하게 이를 기대한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남겨놓는 시골 까치밥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무위의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시골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돈과 성공, 명예를 좇는다. ‘나’ 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진정한 공동체문화는 사라진 채 그 껍데기만 남아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까치밥’이 사라진 현재의 시골 공동체는 도시인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못지않게 시골의 집단화된 이기주의의 기형적인 모습일 수 있다. 이는 종종 외지인에 대한 텃세로 표출되기도 한다. 특히 집성촌 성격이 강한 전통마을이 그렇다.
“10여 세 아래인 원주민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도 본체만체합니다.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해도 왕따를 당해요. 인정과 배려가 사라진 지금의 시골 공동체는 자기들만의 견고한 이기주의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강원도로 귀농한 지 8년 된 정모 씨(60)의 일침은 일그러진 시골 공동체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솔직히 지금의 농촌은 상호부조와 공동운명체로서의 일체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원주민들끼리도 이해관계에 얽혀, 또는 돈 때문에 갈등을 빚는 게 예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농촌 노인의 자살률이 크게 높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골에선 이 베이비부머가 기득권세력이자 마을 리더다. 이들은 농사도 크게 짓고 수입도 안정적이다. 이장, 반장도 이들 차지다. 관청이나 농협에도 이들 세대가 주류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기득권을 더욱 굳건히 한다.
농촌의 4050세대는 그래서 도시에서 들어오는 베이비부머를 가장 경계한다. 혹시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지나 않을까 해서다. 강원 A군의 귀농·귀촌 담당 공무원은 “마을 리더로서 귀농·귀촌인들의 멘토 역할을 해야 할 이장, 반장들이 사실은 귀농·귀촌인들을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시골에서 이장은 이미 권력화한 지 오래다. 면별로 이장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어 지자체장도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땅·주택 매매, 부동산 개발, 각종 보조금 사업 등에 깊숙이 개입해 이권과 돈을 챙기기도 한다. 경기 양평의 한 공인중개사는 “시골 중개업계에서 이장님은 회장님으로 통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최근 강원 H군의 한 이장협의회는 “귀농·귀촌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이들의 정착을 도와 함께 마을 발전을 이뤄나가겠다”는 내용의 실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귀농·귀촌인에 대한 차별행위가 만연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역기능을 낳고 있는 권력화된 이장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이제 시골 공동체는 개념으로서나 실제 모습에서 더욱 유연하고 다양해져야 한다.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이 동반자적 관계에서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고 협력해 상생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차원에서 시골 공동체의 새 모델을 제시하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