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18대 국회의원
정부가 본격적인 탈북민 지원을 개진한 것이 1994년 김일성 사망 시점이었으니 그 역사도 어언 20년이 넘었다. 탈북민 정착 지원을 위해 상당한 재원도 투입되었다. 이제는 각계에 유명 탈북인이 등장하고 다양한 성공 사례도 발표된다. 그러나 여전히 도전과 과제가 많다. 미주와 유럽의 제3국으로 빠져나간 수백 명의 탈남자(脫南者)들과 함께 극소수이긴 하나 북한에 재입북하는 황당한 사례도 있다. 입국하여 수십 년간 뚜렷한 직업 없이 선동, 탈법으로 정부기관을 압박하며 이름을 알리는 정치화된 탈북단체장도 있다. 그래서 ‘탈북민은 곧 통일기둥’이라는 단순 논리가 솔직히 걱정스럽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활수(滑手)한 탈북민 정책을 펴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무엇이 잘못된 걸까?
대한민국 내에서 탈북민들은 ‘귀순 용사요 인권유린의 희생자로서, 북한 정권의 독재성과 악랄함을 웅변하는 사회행동가, 통일의 역군’이다. 남북관계의 교착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탈북민들을 상대로 노정하는 히스테리도 이 분위기에 일조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탈북민 이슈는 ‘개인의 삶, 자립을 통한 인간적 행복 추구’보다는 ‘북한 인권 비판, 북한 정권에 대한 체제 우위 및 통일 역할론 부각’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기에 탈북민에 대한 온정적 감상적 인식이 더해져 주거 및 정착지원금, 취업장려금, 기초생활수급권 부여와 함께 대학 특례, 등록금 면제 등 다양한 지원 보따리가 제공된 것도 사실이다.
탈북민 3만 명도 제대로 품지 못한다면 2400만 북한 주민과의 통일은 요원하다는 일각의 경고는 옳다. 탈북민을 통일 역군으로 키울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 단, 방법은 고쳐야 한다. 정치적 수사(修辭)나 전시성 균분 지원보다는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자활을 독려할 정책에 대해 고민할 때다. 물적 지원을 늘린다고 심리적 만족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기회의 평등과 취약계층 보호는 당연하지만 결과의 평등은 어불성설이다.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따라서 스스로 노력해야 살 수 있다. 통일 리더 운운에 앞서 시장경제하에서 자활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워주자는 것이다. 자립이 안 되는데 어떻게 통일 역군이 될 수 있는가. 이미 생사를 넘나드는 탈북을 통해 강인한 저력과 DNA를 증명한 탈북민들이다. 20년 묵은 탈북민 지원의 시행착오를 반추하고 자활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틀을 다시 짜야 한다. 그게 진정성 있는 북한이탈주민 지원정책이다.
정옥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