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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홍완기 홍진HJC 회장

입력 | 2015-05-20 03:00:00

재봉틀 몇대로 시작… 세계 헬멧시장 석권




홍완기 홍진HJC 회장이 고급 오토바이 헬멧인 ‘알파 1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오토바이 헬멧 만드는 것만이라도 일본 기업을 이기자.”

요즘에는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앞서는 한국 기업이 적지 않다. 하지만 홍완기 홍진HJC 회장(75)이 창업해 해외시장을 개척하던 1970, 80년대만 해도 한국 제품은 일본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이 낮았다. 홍 회장은 앞장서서 신제품 개발을 이끌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일본과의 축구경기나 권투경기에서 패하면 열을 받으면서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 지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싫었어요.”

그로부터 27년 뒤 홍진HJC의 오토바이 헬멧은 일본 제품을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세계 60여 개국에서 연간 200만 개가량 팔린다. 세계 일류 상품으로 수출 비중이 95%를 넘는다. 홍진HJC는 15년째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히든 챔피언이다.

충남 논산시 농가에서 7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홍 회장은 강경상고 졸업 후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못하게 되자 무작정 상경했다. 우유 배달과 생수 판매로 학비를 마련해 한양대 공업경영학과(현 산업공학과)에 다녔다. 그는 취업 대신 사업의 길을 택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게 지상과제였어요. 그러려면 상품을 만드는 사업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사는 열심히 지어도 1년에 1회전밖에 못 해 큰돈을 벌기 어렵고 월급쟁이는 더 그렇잖아요.”

1971년 재봉틀 몇 대로 봉제품을 만드는 홍진기업을 세웠다. 초창기에는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입는 가죽옷, 마스크, 토시 등을 생산했다. 헬멧 내장재를 납품하다 알게 된 ‘서울헬멧’이 경영난에 처하자 친인척에게 돈을 빌려 1974년 인수했다.

“오토바이 헬멧은 생명을 보호하는 장비여서 만들면 보람이 크고 인체공학도 필요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어요.”

1978년 국내 1위를 차지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 시장을 두드렸다. 바이어들은 국제 규격에 못 미치는 강도와 무게, 서양인 두상에 맞지 않는 크기와 모양 등을 이유로 저급 제품으로 취급했다.

좌절을 겪으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세계무대를 겨냥해 미국 연방교통부(DOT) 규격 인증을 받기로 했다. 유명 제품을 구입해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는 등 2년 넘게 구슬땀을 흘린 끝에 1984년 인증을 따냈다.

내친김에 스넬(SNELL) 인증 획득에도 나섰다. 오토바이 경기 도중 넘어지면서 헬멧이 깨져 숨진 미국 선수 스넬을 추모하기 위해 기념재단이 만든 최고의 품질 인증으로 DOT 규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받기 어렵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87년 스넬 인증까지 따내자 제품 인지도가 확 달라졌다.

미국 최대 헬멧 판매업체가 50만 달러어치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로는 큰돈이고 단번에 미국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세계적 기업이 되려면 자체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마침내 1992년 미국 시장 1위에 올랐다.

“투자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남의 것을 베끼거나 똑같이 해서는 이길 수 없어요.”

어렵게 국제 인증을 따면서 연구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영철학을 갖게 됐다. 그래서 매년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 신소재로 만든 헬멧을 업계에서 처음으로 출시하는 등 국내외 특허만 60여 건에 이른다.

사업 과정에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초기인 1974년 헬멧 내피를 만들던 서울 강북구 수유동 공장에 불이 나 설비와 제품을 모두 잃었다. 수출 물량이 늘어나던 1991년에는 큰 수해로 경기 용인시 공장이 흙과 물에 잠기고 완제품이 급류에 휩쓸렸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척 힘들었어요. 하지만 불에 타지도, 물에 떠내려가지도 않는 기술이 있으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자위했어요.”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는 환율 변동에 대비하려고 가입했던 키코(KIKO) 탓에 한 해 매출액보다 많은 1383억 원의 손실을 봤다. 은행의 도움으로 부채 대부분을 출자로 전환해 위기를 넘겼다.

세계적 헬멧 기업을 키워낸 홍 회장이 들려준 조언은 마음에 새길 만하다.

“한 우물을 파서 하나라도 잘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이것저것 하면 힘이 분산되고 집중력이 떨어져 원하는 것을 이루기 어려워요.”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