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끝물
베란다 볕 좋다 미카엘라
빨강 고무대야에 따슨 물 가득
아버지 발딱 앉혀 닦아드린다
손 씻고 발 씻고 코도 팽 풀리고
가슴도 닦아드리고
이윽고 거기까지 닦아드리니
헤, 좋아라 애기처럼
보리 이삭처럼
뉘렇게 웃으시네
누렇게 패이시네
그새 울긋불긋 꽃 이파리 몇 장 날아들어
둥둥 대야 속 떠다니니
아버지 그걸로 또 노시니
미카엘라 건지지 않고 놔 두네
오늘만큼은 땡깡도 부리지 않으시네, 윤 교장선생
소만은 입하와 망종 사이의 절기, 보리 이삭 누렇게 익고 초목이 무럭무럭 자라 농촌 일손이 한창 바쁠 때다. ‘봄 끝물’, 여름 맏물. ‘베란다 볕’도 좋아 ‘미카엘라/빨강 고무대야에 따슨 물 가득/아버지 발딱 앉혀 닦아드린다’. 정답게 세례명을 부르는 걸 보니 미카엘라는 화자의 누이 같은 아내, ‘아버지’의 딸 같은 며느리. ‘손 씻고 발 씻고 코도 팽 풀리고’, ‘이윽고 거기까지 닦아드리니’ 아버지 ‘헤, 좋아라 애기처럼’ 웃으신단다. 육신도 정신도 ‘애기’가 된 연로하신 아버지, 하지만 다른 이의 손을 빌려 몸을 씻는 게 영 내키지 않으셨을 테다. 그래 목욕하시자 할 때면 버럭 화를 내며 ‘땡깡’을 부리셨을 테다. 욕실에 모시는 일이 전쟁이었는데 오늘은 참으로 볕 좋은 베란다에서 ‘애기처럼’ ‘윤 교장선생’님, ‘따슨 물’에 몸 담그고 잠방잠방 물장난도 하며 웃으시네요. 미카엘라는 소만의 햇볕, ‘따슨’ 어머니의 손길로 노인의 몸을 어루만져라.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