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쇼닥터들 왜 침묵하나
내 또래에서 백수오를 안 먹은 사람을 찾기 힘든 이유가 갱년기 증세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홈쇼핑 업체가 백수오를 안 먹으면 큰일 날 듯한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 전위대가 쇼닥터(Show doctor)들이다. 한 홈쇼핑의 경우 내츄럴엔도텍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백수오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는 의사가 출연해 백수오를 팔았다. 이 의사는 ‘가짜 백수오’로 찍힌 이엽우피소가 백수오에 섞인 것을 몰랐겠지만 소비자들은 의사의 지명도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을 것이다. TV를 통해 건강정보를 제공하는 쇼닥터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이들도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도 얻고 돈도 벌던 쇼닥터들이 왜 지금 사태에 침묵하는지 배신감을 느낀다.
여성의 무지도 비판을 피해가기 힘들 것 같다. 건강기능식품보다 훨씬 값싸고 효과적인 갱년기 증세 처방이 있는데도 한국이 그걸 외면하는 것은 의학계의 미스터리다. 갱년기 증세는 나이가 들면서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져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갱년기 치료법의 핵심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투약해주는 것이다.
에스트로겐인 호르몬 보충제는 건강보험을 적용하므로 매일 먹어도 한 달 약값이 5000원 안팎이다. 그런데 한국 여성들은 호르몬 보충제 대신 20배가량 비싼 백수오를 사먹으니 희한한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호르몬 보충제에 유방암 발생 비율을 높이는 부작용이 있다면 백수오도 마찬가지다. 백수오는 천연 에스트로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수오는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 오신하는 경향이 있다.
식품에 규제완화 해온 정부
나는 백수오는 괜찮고 이엽우피소는 나쁘다는 인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내츄럴엔도텍에만 쏟아지는 비난도 마뜩지 않다. 쇼닥터의 과대광고, 정부의 관리부실,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국민의 과잉믿음이 합쳐진 결과가 가짜 백수오 파문이다. 그 배후에는 인위적으로 노화를 거부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있다. 이번 소동을 보며 갱년기 증세를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였던 옛날 사람들이 참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