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남은 2명은 여야가 각각 공동위원장으로 추천한 민간인 교수 2명이다. 민간인 2명 대 공무원 7명이라는 비율 자체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기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인 교수도 사학연금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로, 다른 건 몰라도 연금 개혁 앞에서는 공무원과 동병상련(同病相憐) 관계에 있다. 민간인 교수와 공무원, 또 공무원단체 대표와 정부 측 인사 간에 입장이 같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 모두 국민연금이 아닌 특별연금의 수혜자라는 대동(大同)에 비하면 입장차는 소이(小異)에 불과하다.
국민대타협은 애초 없었다
실무기구 합의안은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나온 결과다. 실무기구라는 이상한 기구가 출현한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활동 시한 종료일인 3월 28일까지도 합의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대타협이 실패하고 실무기구가 가동돼 합의안을 내놓은 것은 5월 1일이다. 이 합의안에 여야 대표가 동의하고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가 통과시켰다.
국민대타협기구는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이라는 설립 근거가 있지만 실무기구는 이런 근거도 없다. 국민대타협기구 자체에 이미 너무 많은 공무원이 들어가 있다. 그래도 국민대타협기구에는 여야 의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고 민간인 교수도 더 있었지만 실무기구는 거의 공무원 일색이다. 실무기구가 근거가 있건 없건 여야가 받아들였으니 그 안(案)이 국회의 안이 틀림없다. 다만 이것을 국민대타협의 결과라고 강변한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국민대타협 대신 입장이 약간씩 다른 공무원들의 대타협이 있었다. 공무원은 공무원연금에서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아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무원들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인 만큼 공무원들이 옵서버로 참여해 협의 과정을 지켜볼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입안자가 되는 것은 합의된 결과가 어떤지를 떠나 그 형식부터가 잘못됐다.
공무원연금 합의안이 나온 이후 나라는 떠들썩한데 공무원 단체들은 조용하다. 5월 1일까지만 하더라도 주말마다 도심을 시위로 얼룩지게 했던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시위’라는 것이 5월 2일 이후로는 쏙 들어갔다. 공무원연금 적자를 70년 동안 333조 원을 줄이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있는 개혁인지는 일반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반응을 보면 공무원들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미미한 개혁에 그쳤음에 틀림없다.
공무원연금 합의안은 국민연금과 연계됐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합의안 자체가 실패한 것이다. 하나의 원칙이 무너지면 다른 원칙도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나니까 이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개혁 원칙도 무너지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