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사회부 기자
비슷한 논란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서울시는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성 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의 포함 여부를 두고 시민위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합의에 실패했고 시민위원회는 표결을 통해 성 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간 인권헌장을 의결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다”며 헌장을 선포하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시민위원들은 세계인권의 날에 직접 헌장을 선포했지만 서울시는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날 박원순 시장은 페이스북에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혹하게 존재하는 현실의 갈등 앞에서 더 많은 시간과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이번 일로 인해 제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은 모진 시간이었다’고 적었다. 헌장을 선포하거나 폐기하겠다는 언급이 없는 모호한 글이었다.
필자는 서울시 관련 조례들을 살펴봤다.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6조에는 ‘시장은 광장 사용 신고자의 성별·장애·정치적 이념·종교 등을 이유로 광장 사용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비록 동성애가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포괄적인 차별금지 조항에 따라 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셈이다.
한편 인권기본조례 제12조에는 ‘시장은 인권헌장을 제정하고 선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지난해 시민들이 만든 인권헌장의 선포를 5개월째 미루고 있다. 시장이 조례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장에 문제가 있다면 재논의를 해야 하는데 서울시는 그럴 계획도 없다. “차별은 없어야 한다”며 성적소수자들에게 서울광장은 내어주면서 인권헌장에는 묵묵부답인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인권헌장에 성적소수자뿐 아니라 청소년 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복지 안전 환경 등 서울시민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동성애 논란을 푸는 게 어렵다고 인권헌장 전체를 덮어버리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인권 변호사 경력을 높이 사서 표를 던진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박 시장은 답을 해야 한다.
황인찬 사회부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