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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저 절로 가는 길’ 속엔 저절로 가는 길이 있다

입력 | 2015-05-21 20:09:00


● 고원영 작가 절길 이야기 ‘저 절로 가는 길’ 출간

그는 우리 국토 전체가 성지순례길 임을 깨닫고 7년째 성지순례 중이다. 우리 문화유산의 70% 정도가 불교와 관련됐으니 그가 말하는 성지란 바로 절(卍)과 불교유적지다. 절 700여 곳을 탐방했다. 스님, 산악인, 대졸 미취업자, 주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도반으로 참여했다. 탐방대장인 그는 고원영 작가다. 고 작가는 절을 순례하고 참배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저 절로 가는 길’(고원영 지음 l 홍반장 펴냄)이 그것이다. ‘저 절로 가는 길’은 단순한 탐방기가 아니다. 순례를 하면서 얻은 저자의 ‘정신적 고뇌’의 산물이자 내면으로 들어가는 정신운동이다.

절길 속엔 삶의 길이 있다. 그는 왜 절로 갔을까. 그는 오래 전부터 우리시대 사람들의 차가운 사고와 촘촘한 언어가 불편했다고 했다. 사회와도 불화를 겪었다. 세상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 그만의 국가에서 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돈을 위해 현대문명에 가탁해서 사는 일은 삶의 비루함만을 남겼다. 지천명이 돼서야 그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미친 듯이 우리 산하를 휩쓸고 다녔고 문화를 섭렵하는데 모든 걸 쏟았다.

이 책에는 서른여섯 개의 절 이야기가 있다. 서울 수도권 전남 등 전국의 절을 골고루 아우른다. 모두 유명한 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원사 봉원사 등 유명 절도 있지만 일락사 불갑사 등 생소한 절도 많다. 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절로 가는 길과 사유에 깊은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면 철학 종교 역사 등에 조예가 깊은 작가의 사유에 혀가 내둘러진다. 부처의 일대기와 사상을 쉽게 알려준다. 또 경허 아래서 함께 공부하던 수월과 만공의 일화, 그리고 법정스님의 맏상좌였던 덕조스님의 근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교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불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느 날 소수서원을 나와 국망봉 아래에 있는 석륜사를 찾아가서 소백산을 샅샅이 유람할 요량으로 거기서 사흘을 머물렀던 퇴계 같은 유학자와 18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북한강변의 본가로 돌아와 어릴 때 오르내리던 운길산을 바라보며 늙어 기력 없음을 슬퍼하는 시를 지었던 다산 정약용 등도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1890년에 깎아지는 벼랑길로 북한산 중흥사를 찾아갔던 기록을 남겼던 영국 여행가 아놀드 새비지 랜도어, 그리고 다산 유배길 중 ‘뿌리의 길’을 시를 지어 찬탄한 정호승 시인까지 종교와 시대를 뛰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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