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실한 야구 계기가 된 ‘2007년 김성근 밥상머리 교육’
프로서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바위 앞에서
야구인생 지렛대가 돼 준 김감독의 한마디
그 때부터 밥 먹는 것만큼 지독하게 야구
필살기 체인지업 장착 최정상 불펜투수로
정우람 “지금도 밥만 보면 그 때가 생각나”
“밥은 왜 먹냐?”
김 감독 : “우람아, 밥은 왜 먹냐?”
정우람 : “?…”
김 감독 : “밥은 왜 먹냐고?”
정우람 : “살기 위해 먹는데요.”
한편으로 보면 원초적인 물음이고, 한편으로 보면 철학적인 우문(愚問)이다. 그런데 “살기 위해 먹는다”는 현답(賢答)이 튀어나왔다.
김 감독 : “그래,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 그런데 살기 위해 야구도 하는 거야.”
정우람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던 정우람도 그제야 대충 느낌이 왔다. 김 감독의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밥은 왜 먹는가’라는 화두로 시작된 밥상머리 교육은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고 답했던 정우람은 정작 밥을 앞에 두고도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밥 대신 배불리 먹었던 꾸중. 8년 전, SK 담당으로 이런 내용의 기사를 썼던 기자에게 정우람은 “당시 상황이 지금도 기억난다”며 웃었다.
“꾸중이라기보다는 훈계였죠. 어릴 때였는데, 그날 많은 것을 생각했어요. 200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도 빠지면서 그해 겨울부터 정말 독하게 야구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밥 먹는 것 이상으로 절실하게. 지금도 밥을 보면 문득문득 그때가 생각나요. 그럴 때마다 저를 돌아보곤 하죠.”
2004년 프로 데뷔 이후 한 뼘씩 성장하며 직진하던 정우람은 2007년 갑자기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만나 정지를 했다. 당시 원포인트 릴리프로 살아가던 그가 장착하고 있던 레퍼토리는 직구 아니면 슬라이더였다. 그것만으로도 2006년 82경기(46.2이닝)나 나갔을 만큼 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7년 타자들에게 공이 맞아나가기 시작했다. 구종도 단순했거니와 좋았던 컨트롤마저 흔들렸던 탓이다. 자신감이 떨어졌다. 2군을 들락거리는 일도 잦았다. “밥은 왜 먹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만났을 당시, 그는 엔트리에 빠진 채 1군 선수단과 동행하고 있었다. 이후 그는 ‘살기 위해’ 밥을 먹듯, ‘살기 위해’ 야구에 매달렸다. 지금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체인지업도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연마한 덕에 얻은 생존의 필살기다. 할머니가 ‘우람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처럼, 그는 이제 SK 불펜의 대들보이자 대한민국 최정상의 셋업맨으로 우람하게 자랐다.
무심코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때로는 잔잔한 호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수도 있다. 거창한 말도 아니다. “밥은 왜 먹는가”라는 삶의 근원적 질문 하나는 정우람에게 잠들어 있던 ‘도전 DNA’를 일깨웠다. 그 한마디는 야구인생에서 맞닥뜨렸던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들어 올려준 고마운 지렛대가 됐다.
잘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인생의 지렛대가 되어준 한마디쯤은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거창하진 않을지라도.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