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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日 세계유산 등재의 조건

입력 | 2015-05-22 03:00:00


일본 정부는 근대화 산업유산 23개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 가운데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자가 4700명, 다카시마 탄광에는 4만 명, 하시마 탄광은 600명, 미이케 탄광 및 미이케 항은 9200명, 야하타 제철소에는 3400명이 있었다. 일본은 ‘비서양 세계에서 근대화의 선구’라는 멋진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어두운 측면은 숨기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협약 전문에는 ‘세계의 모든 인민을 위해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유산을 보호한다’고 되어 있다. 한 국가의 문화유산이 세계의 문화유산이 되려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1868∼1912년)에 한정한 것으로 일제 말기의 강제 징용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궤변이다. 나가사키 조선소를 방문해 메이지 시대의 나가사키 조선소를 구별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방한 중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 탄광 등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하루 전날 이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보코바 사무총장에게 똑같은 우려를 표명한 마당에 “굳이 대통령까지 나설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은 위원국들이 내린다.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사무총장은 개입하기 어렵다. 효과는 기대할 수 없고 일본의 반발만 초래한 우려 표명이었다.

▷우리 외교관들은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현실적인 목표는 등재 조건으로 과거 조선인 강제징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은 나치 시절 강제노동이 있었던 촐페라인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정부 차원의 추모 시설을 지었다. 아베 신조의 일본이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늘 이 문제로 한국과 일본의 첫 번째 협의가 열린다. 양국이 이 문제로 오래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