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형권 특파원
그 근거의 하나로 제시한 반 총장의 1년 일정(2012년 기준)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항공 마일리지가 약 29만625마일(약 46만7715km). 지구를 열 바퀴 넘게 돈 셈이다. 각종 면담이 1727회, 기자회견 인터뷰 등 언론 관련 일정이 172회, 유엔 회원국 정상과의 공식 전화통화만 270회.
그런 반 총장이 해외 언론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비판은 ‘어디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이었다. 역대 유엔 수장 중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반 총장이 ‘존재감 없다’는 지적을 받는 역설적 상황이 유엔을 출입하는 기자에겐 늘 미스터리였다.
‘모든 사람에게 잘하고, 모든 일을 잘하려는 반기문 스타일’은 반 총장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자기모순적 상황을 계속 만들고 있다. “국내 정치에 관심 없으니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까지 말하면서도 뉴욕을 방문하는 정치인 등 국내 주요인사는 거의 다 만나준다. 고향 후배들은 ‘정기적으로 만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나고, 한국으로부터의 각종 영상 메시지 요청도 뿌리치지 못한다. 뉴욕에서 ‘반 총장과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 각별한 사이’임을 자랑하는 재미동포도 여럿 봤다.
반 총장 임기는 이제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이런저런 안티(반대) 세력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기에는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성공한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 보인다. 딴생각이 없으면 말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