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대 몸속에 아직 차오르지 않는
꽃대의 빈 속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바람의 쓸쓸한
안부를 빈 가슴으로 적셔보는 일입니다
무수한 날이 별똥별처럼 떨어질 때
아직 봉인되지 않는 입술은 부르터
바람인 듯 쉬 닫히지 않습니다
직립의 사무침이 한 곳에서
기다림으로 붉게 꽃피울 수 있는 것은
깜깜함이 온통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대를 들여다보고 있나요
마음의 모퉁이를 서성이던 날들이
발신음으로 떨고 있지는 않나요
기다림은 비어있는 자리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비워놓은 그대 손길입니다
우체통의 위상이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무채색 거리를 예쁜 악센트로 장식해 주고 생활 속에 크게 필요한 존재였던 빨강 우체통. 요즘은 이용자가 준 만큼 드물어졌다. 덩치는 전보다 사뭇 크다. 하나당 맡은 구역이 넓어져서이기도 할 테고, 보다 큰 우편물도 담게 하기 위해서일 테다. 누가 아직도 우체통을 이용할까. 우체국까지 갈 시간이나 기운이 없는 사람, 우체국 직원을 직접 대하는 게 수줍은 사람, 혹은 거리껴지는 사람…. 아무튼 우체통은 간편한 우편 통로, 일반우편물에 무게에 해당하는 액수의 우표를 붙여 넣으면 하루 한 번 수거해 간단다. 3개월 동안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우체통은 철거된다니 자기 동네 우체통을 어여삐 여기는 이여,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이 안타까운 이여, 계절마다 누군가에게 편지 한 통 써서 우체통에 넣으시라. 이 시의 중심 언어는 ‘기다림’이지만, 우체통 앞에서는 우체국에서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오.
방치되다시피 찾는 이 거의 없는 우체통에서 화자는 ‘꽃대의 빈 속’ 같은 ‘기다림의 내부’를 본다. 그건 거기 휘도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바람의 쓸쓸한/안부를 빈 가슴으로 적셔보는 일’이란다. 우체통은 화자의 사무친 기다림의 등가물이다. 기다리면 올까요? 아니, 당신을 기다려도 될까요? 내가 기다리는 걸 당신은 알기나 하는지요. 막막히 ‘마음의 모퉁이를 서성이던 날들’, 그 ‘무수한 날이 별똥별처럼 떨어질 때’란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거의 잊혀도 ‘기다림으로 붉게 꽃피’우는 우체통처럼 우직하게 기다리는 단심(丹心)을 지키겠노라는 화자다. ‘기다림은 비어 있는 자리가 아닌’이라는 시구에서 ‘기다림’은 비워 놓았건 비었건 ‘빈자리’라는 걸 알겠다.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아날로그적 정서가 간절하고 쓸쓸하게 담겨 있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