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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금배지’ 꿈꾸는 정책전문가… 의원의 방패-家臣 역할도

입력 | 2015-05-25 03:00:00

[입법권력 숨은 실세, 국회 보좌관]보좌진 2048명의 명암
‘입법 실세’ 겸 ‘의원 집사’… 국회 보좌관의 明과 暗




《 국회의원 보좌진은 ‘양날의 칼’에 비유된다. 자신이 맡은 정부부처의 정책이나 법안을 국회의원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관련 지식은 깊이가 있고 상황 파악에도 뛰어나다. 국회의원 상당수는 보좌진이 내놓는 법안이나 정책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른 의원실에서 발의한 법안을 검토하고 서명하는 일도 사실상 보좌진의 ‘입김’에 좌우된다. 그러다 보니 각종 이익단체가 원하는 법안이나 정부의 우회입법 제안도 의원보다 보좌진에 집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좌진은 정부 정책과 예산 편성을 감시, 감독하는 입법 전문가로 ‘팔리아크라트’(parliament+bureaucrat·국회+관료의 합성어)로도 불린다. 반면 의원의 종복으로 불법도 서슴지 않는 자세가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동아일보는 보좌진 20명과 보좌진 출신 의원을 심층 인터뷰해 명과 암을 짚어봤다. 》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권력 3인방….’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정권 실세’로 불린 이들의 공통점은 ‘국회 보좌진 출신’이라는 점이다. 많은 정치인이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선거에 도전하는 현행 정치 구조상 국회 보좌진은 국회와 지방자치단체, 청와대에서 근무한다. 실제 보좌진 출신 정치인도 17대 국회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같은 전현직 광역단체장은 물론이고 국회 재적의원 298명 중 26명이 보좌진 출신이다. 국회 보좌진은 정치권에서 ‘입법권력 시대의 숨은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 그에 따른 긍정론과 부정론도 갈리고 있다.

○ 정책 전문가 vs 가신(家臣)

“모든 걸 책임지겠습니다. 그게 바로 보좌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미국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상원의원 보좌관은 자신이 모시는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이렇게 말한다. 실제 많은 보좌관이 이 말로 보좌진직의 ‘비극적 운명’을 설명한다.

대부분의 보좌진은 의원과 맺는 주종 관계와 입법부의 정책 전문가라는 역할 사이에서 갈등한다. 정책 전문성보다 충성심이 때론 더 중요한 업무 특성이기 때문이다. 전직 비서관 출신 A 변호사는 “입법 전문가를 꿈꾸고 들어왔지만 의원이 원하는 건 능력보다는 집사 같은 태도가 먼저였다”고 털어놨다. B 보좌관은 “민원 담당이나 사적인 비서 역할부터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자세를 직간접적으로 강요받기도 한다”며 “민원인들에게 의원 대신 욕도 먹어야 하고 ‘총알받이’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가신이 된 만큼 그에 걸맞은 요구도 다양하다. 지난해 12월 C 보좌관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의원 후원금을 내달라는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출판기념회를 열기 어려워져 후원금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의원이 다른 의원실과 비교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후원 요청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D 보좌관은 “암묵적으로 지역구로 주소를 옮기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내 가족의 얼마 안 되는 표라도 (이사를 해서) 정성을 보이라는 거여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은 ‘정무직 공무원’의 불안한 고용구조에서 기인한다. 임면권자인 의원의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란 말 한마디면 바로 백수가 된다. 전형적인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12월 당시 비서관 E 씨는 의원에게서 “1월 말까지만 근무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E 씨는 “선거 때 도와준 인사에게 ‘보답할 자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의원이 해직 이유를 설명했다”며 “그나마 한 달가량 여유를 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라고 씁쓸해했다. 국회 보좌진은 언제 어느 때든 의원의 마음이 바뀌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신세라는 것이다.

또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 따라 국회 보좌관의 희비도 엇갈린다.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수도 있는 만큼 의원의 정치 생명과 한 몸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치르면서 소송에 얽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F 보좌관은 지난해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경선에서 모시던 의원의 경쟁자였던 같은 당 G 의원을 공격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자신의 의원은 선거에서 이겼지만 소송에 도움을 준 일은 없었다. F 보좌관은 다른 의원실로 이직할 때 G 의원의 입김으로 하루 만에 퇴출당하기도 했다.

○ 정무와 정책의 ‘보이지 않는 손’

2012년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 슬로건도 보좌진의 손을 거쳤다. 당시 민주노총 대변인 출신의 손낙구 보좌관이 정시 퇴근제와 여름휴가를 2주로 늘리는 ‘집중휴가제’ 등 정책을 만들었고 김계환 비서관이 문구를 정리한 것이다. 손 보좌관은 “시대가 변하면서 보좌관의 위상도 달라졌고 요즘은 의원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좌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책과 입법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부심도 매력이다. 16년 경력의 김영재 보좌관은 10년째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담당한 산업통상 분야 전문가다. 김 보좌관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먼저 파악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며 “자기가 일한 성과들이 정책으로 실현되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보좌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의원을 대신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회의원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다시 의원으로부터 위임받은 셈이다. 보좌관 출신의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결정은 의원이 최종적으로 하지만 선택지를 올리는 것은 보좌진”이라며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보좌진의 가치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무와 정책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회 보좌진이 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높아지는 보좌진의 스펙이 이를 방증한다. 24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휴직자 13명을 제외한 4∼9급 보좌진 2035명 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32명(1.6%), 석사학위 소지자는 344명(16.9%)이다. 298명의 의원실 10곳 중 1곳은 박사 보좌진이 근무하고 의원실마다 석사 보좌진이 근무하는 셈이다. 변호사, 노무사, 세무사, 회계사 등 전문직 자격증을 소지한 보좌진도 30여 명으로 추정된다. 23년 경력의 한 보좌관은 “17대 국회부터 변호사나 박사학위 소지자 등 보좌진의 스펙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10년 이상 장기 근무하는 ‘베테랑’ 보좌진도 늘었다. 보좌진 2048명(휴직자 13명 포함) 중 303명(14.7%)이 10년 이상 근무했다. 공무원연금 대상인 20년 이상 재직자도 21명이나 됐다. 그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은 보좌진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덕분에 17대 국회에서 6387건에 불과하던 의원입법은 18대 1만2220건, 1년가량 남은 19대 국회에서는 1만3622건으로 크게 늘었다. 외형적으로나마 국회의 입법 활동이 활발해진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홍정수 hong@donga.com·황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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