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기 강릉원주대 식물생명과학과 명예교수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화목(花木)이 개나리와 벚꽃이라면 민들레와 할미꽃은 단연 풀꽃의 으뜸이다. 벚꽃과 개나리는 예나 다름없이 봄이 되면 들판에 만개하고 민들레도 여전히 우리 뜰에서 봄을 지키고 있건만 같은 초화(草花)인 할미꽃은 자연을 떠나 사람들의 보호 속으로 숨어 버렸다. 할미꽃 이상으로 예쁜 민들레가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는 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볼 수 있는 겨울 풍경의 진수는 하얀 눈밭에 어우러진 자작나무 줄기의 은백색 조화이고, 파란 들판을 순황으로 뒤덮는 민들레의 향연은 봄의 전경이다. 봄을 장식하는 유채나 벚꽃 그리고 가을을 단장하는 단풍의 아름다움은 작은 개체가 모여 웅장한 하나를 시현하는 ‘집단미’다. 군집을 이룰 기회가 없는 한국의 민들레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방에서는 꽃피기 전의 민들레를 포공영(蒲公英)이라는 약재로 쓴다. 간 및 위 기능 보호, 변비 개선, 정혈, 이뇨, 담즙 분비 촉진 등과 열로 인한 종창·유방염, 인후염, 맹장염, 복막염, 급성간염에도 사용한다고 하니 야생화로서의 관상미보다 건강을 지키는 약용식물로서의 가치가 수월하다. 강원도 양구에서는 민들레의 기능성을 살린 차(茶)를 개발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민들레는 관상과 약용 가치 외에 시사하는 교육적 가치도 높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그 속성을 잘 살리면 기회 가치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민들레차’의 사례가 말한다. 대충 보는 눈에는 없던 것이 자세히 보면 보이고, 앞에선 안 보이던 것이 뒤에서 보면 없던 것도 보인다. 두루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기회를 준다는 사실 앞에서 집중의 필요성을 배워야 한다.
민들레의 또 다른 교훈은 강인한 생존력과 번식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민들레는 고산지나 추운 지방에서는 뿌리를 깊이 뻗어 추위와 건조를 이겨내고 보도블록의 틈바구니에서도 꽃을 피워 낼 만큼 강하다. 무궁화는 피고 지기가 무궁하여 나라꽃이 되었다지만 민들레는 일제의 탄압보다 혹독한 짓밟힘에서도 살아남아 꽃을 피우는 실로 민초(民草)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민들레는 충분히 매혹적이지만 벌 나비들을 유혹하고자(충매화·蟲媒花) 흰 꽃을 노란 꽃으로 바꾸었다(노란 꽃이 유전적 우성). 외모가 경쟁력인 이 시대에 민들레는 ‘나를 가꾸는 일이 나는 물론 남을 즐겁게 하는 배려’라 항변하고 이에 맞추어 젊은이들은 성형도 불사하는 듯하다. 그런 노력으로 얻은 씨앗을 더 넓은 세상에서 더 강하게 살아가도록 낙하산을 지워 날려 보낸다. 부모 슬하에 안주하며 재산 싸움이나 하는 자식들에게 민들레는 ‘저 넓은 세상에 더 많은 기회와 할 일이 있다’고 웅변한다. 민들레처럼 강하게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