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은 북한의 함경북도와 중국의 지린 성 옌볜조선족자치주를 가르는 국경이다. 옌볜의 중심인 옌지에서 룽징을 거쳐 투먼으로 가다 보면 차창 오른쪽에 두만강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 북한 땅이 보인다. 두 나라 국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강폭이 좁은 곳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옌볜 옌지 룽징 투먼으로 표기하지만 중국 땅인 조선족자치주의 간판이나 이정표의 한글은 우리 한자 발음대로 연변 연길 룡정(용정) 도문으로 써 있다.
▷얼마 전 룽징에서 투먼으로 가는 길의 두만강 맞은편 북한 지역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자주 눈에 띄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원래부터 벌거숭이산이 아니라 북한 당국이 두만강을 통한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나무를 모두 베어내면서 헐벗고 황량한 산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다시 살펴보니 강폭이 좁거나 수심이 얕아 주민들이 건너기 쉬운 지역일수록 황톳빛 맨살을 드러낸 산이 많았다.
▷한국과 중국이 1992년 수교한 뒤 옌볜의 한민족 사회에서 한국에 친척을 둔 사람을 부러워했듯이 요즘 북한에서는 중국에 친척이 있는 주민이 선망의 대상이라는 말도 들었다. 옌볜 지역이 한국과의 활발한 교류에 힘입어 과거보다 발전했고 옌지는 ‘리틀 서울’로 불리기도 하지만 옌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여전히 한국의 수십 년 전 생활수준과 비슷하다. 북한의 ‘옌볜 친척’ 이야기는 북한 주민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아프게 일깨워준다.
▷일제는 강점기에 중국과 가까운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에 공장과 발전소를 많이 지었다. 이 때문에 70년 전 광복을 맞았을 때 북한 지역의 경제력은 남한을 압도했다. 그러나 김일성 3대의 장기 독재로 북한 주민의 삶과 인권은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추락했다.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산에 다락밭을 조성하고 주민이 땔감을 채취하면서 북한에선 어딜 가나 민둥산이 많다. 하지만 두만강변의 민둥산은 굶주림과 폭정을 견디지 못해 탈출하려는 주민을 감시하기 위해 잡목과 풀까지 제거해버렸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 산’이 생각났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