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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인간의 의지’ 표현했던 카를 닐센 150돌

입력 | 2015-05-26 03:00:00


“오케스트라 속의 하프 소리는 수프에 뜬 머리카락과 같다.” 오래전 음반 해설지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문장입니다. 작품은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1865∼1931)의 교향곡 4번 ‘불멸’(1916년)이었습니다. 본디 오케스트라의 하프 소리는 풍성하고 부드러우며 요정이나 여신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데, 왜 그렇게 혐오감이 드는 표현을 썼을까….

의문은 새로 뜯은 CD를 듣는 순간 풀렸습니다. 집요할 만큼 철두철미 격동적인 음향, 강력한 의지의 표현. 교향곡 ‘불멸’은 닐센이 1차 세계대전 중 쓴 작품입니다. 중립국이었던 덴마크도 인접한 독일에 의해 강제로 전쟁에 이끌려 들어가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닐센은 그 와중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교향곡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감상주의에 쉽게 휩쓸리지 않은, 꿋꿋한 북유럽인이었던 닐센으로서는 하프가 유약함을 표상한다고 생각해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가 교향곡 제목으로 쓴 ‘불멸’은 ‘Immortal’이 아닙니다. 덴마크어로 ‘Det Uudslukkelige’, 영어로는 ‘The Inextinguishable’입니다.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힘으로 없앨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굳이 더 상세히 표현한다면 ‘불멸’보다는 ‘불가멸(不可滅)’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올해는 닐센의 탄생 150주년입니다. 전 세계가 그와 동갑내기인 핀란드 거장 시벨리우스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과 비교하면, 나란히 북유럽에서 활동했던 닐센에 대한 관심은 다소 초라한 감도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한다는 얘기를 듣기 힘들군요. 그의 생일은 6월 9일입니다. 굳이 큰 편성의 ‘불멸’ 교향곡이 아니더라도, 그의 풍성한 실내악 레퍼토리 중 한 곡이라도 더 듣고 싶습니다.

서울시향은 7월 21일 서울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실내악 시리즈-스칸디나비안 윈드 앙상블’에서 닐센의 목관 5중주곡을 선보입니다. 호른을 더한 5개 악기의 음색 조합을 효과적으로 표현했고, 신고전주의적 날렵함과 특색 있는 변주곡 끝악장도 있어 ‘현대 목관 5중주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