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
정부는 ‘올 것이 왔다’며 충격에 휩싸였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는 아직 미완성 상태. 북한이 추가 핵실험 직후 핵 공격 협박을 쏟아내자 증시가 추락하고 외국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국민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생필품을 사재기한다.’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닥칠 ‘북핵 악몽’의 서막일 수 있다. 국방부도 4, 5년 뒤 북한이 핵을 장착한 SLBM을 실전 배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핵이 한국의 숨통을 조일 ‘흉기’로 등장할 때가 임박했다는 섬뜩한 예언처럼 들린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군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핵 위협을 ‘날아가는 창’, 한국의 대응을 ‘기어가는 방패’에 각각 비유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의 대북 군사력 건설 계획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은 북한보다 서너 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면서도 북의 기습 도발에 매번 뒤통수를 맞았다. 진화를 거듭하는 북한의 비대칭 위협을 간과하고, ‘뒷북 대처’로 일관한 결과다.
하나씩 따져 보자. 북한은 세 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최대 20여 기의 핵무기로 무장했지만 한국의 북핵 대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북핵 시설의 감시 전력과 정밀 타격 무기의 도입 배치는 더디기만 하다.
북의 탄도미사일 위협 대책도 빈약하다. 북한은 사거리 100km 안팎의 단거리 미사일부터 1만 km 이상의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2년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통해 탄도탄 사거리를 300km에서 800km로 늘렸을 뿐이다. 17조 원이 투입되는 킬 체인과 KAMD 체계도 2020년대 중반에나 구축된다. 이마저도 북핵 위협에 완벽 대처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잠수함 척수는 북한(80여 척)의 4분의 1 수준이다. 잠수함 사령부도 예산 문제로 계획보다 3년이 늦어져 올 2월에 창설됐다. 북한이 SLBM을 탑재한 신형 잠수함을 배치하면 남북 간 수중 비대칭 전력 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이버 전력의 대북 열세도 심각하다. 북한은 해커 1700여 명 등 6800여 명의 사이버 전사를 운용하면서 사이버 도발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한국은 2009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고서야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다. 사이버사 인력 규모도 600여 명으로 북한의 10분의 1에 그친다.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자하고도 북한의 도발에 번번이 농락당하는 현 전력 증강 정책을 군은 재고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맞설 역비대칭 전력 개발이 시급하다.
북한 지휘부를 겨냥한 SLBM을 탑재한 중형 잠수함과 북한의 핵, 미사일 기지를 고철로 만드는 고출력마이크로웨이브(HPM)탄, 전자기파(EMP)탄 등이 대표적 사례다.
북핵 대응 전력 건설의 발상 전환을 군 수뇌부는 더 늦기 전에 고민해 봐야 한다. 그것이 북핵 악몽의 실현을 막는 최소한의 자구책이라고 본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