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출근길 라디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내 모든 걸 바쳐 당신만은 지키겠다는 뜨거운 청춘의 노래.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곡 ‘그대에게’였다.
그런데 살면서 수백 번은 들었을 이 노래가 참기 어려울 만큼 슬펐다. 무대를 뛰어다니던 앳된 미소의 청년도, 내 몸이 녹아내려도 임이 계신 태양 가까이 가겠다는 열정도 느끼기 어려웠다. 아마도 7개월 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슬픈 사실은 또 있다. 그처럼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것이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교수는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해 매년 입원 환자(598만 명)의 9.2%가 의료 사고를 겪고, 이들 중 7.4%인 약 3만8000명이 사망한다는 추계를 발표한 바 있다. 매일 100명이 넘는 사람이 의료사고로 세상과 이별한다는 소리다. 의료사고가 ‘남의 일’이 아닌, 교통사고처럼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가 됐을 때 보상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신해철 사건처럼 사회적 주목을 받은 사건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보상 없이 민사소송의 늪에 빠져 있다. 일반 국민의 경우는 더 큰 절망에 빠질 공산이 크다. 실제로 현재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해도, 의료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의료사고 예방 활동은 미미한 실정이다. 병원들은 기본적으로 의료사고에 대해 쉬쉬한다. 부작용 사례를 모아서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사고 재발에 대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더욱이 현대 의료 기술이 전문화되면서 자기 전공 분야를 제외한 분야의 부작용 사례를 공유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민호 중재원 상임감정위원(한양대 명예교수)은 “현대 의사는 오케스트라가 아닌 자기 전공만 잘 아는 기능공에 가깝다”며 “예를 들어 의사들이 컴퓨터단층촬영(CT) 이전에 먹는 조영제로 인한 부작용 발생 비율 수치는 알아도, 조영제와 함께 먹을 때 문제가 되는 당뇨병 약 등 세부적인 지식까지 얻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의료사고 예방 교육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사고 케이스를 축적하고 있는 중재원이 전공과별 의료사고 유형을 정리 배포하고, 보건복지부가 이를 활용해 의대 교육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