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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강제 리빌딩’ LG, 팬들도 진득하게…

입력 | 2015-05-28 03:00:00


“무적 LG”를 외치며 열성적인 응원을 펼치는 LG 팬들. 동아일보DB

“하룻밤은 영웅 대접을 받다가, 다음 날 밤엔 야유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나면 다시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런 그들이 제정신일 리가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2000경기 이상을 뛴 명포수 제이슨 켄들이 ‘이것이 진짜 메이저리그다’란 자신의 책에서 마무리 투수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비단 마무리 투수만 그럴까. 요즘 한국 프로야구를 보면 감독, 코치, 선수 누구라도 제정신이기가 어려울 듯싶다. 한두 경기 잘하면 찬양에 가까운 칭송을 받다가, 잠시 부진하면 극심한 수모를 당한다. 응원이나 비난은 팬들의 특권이다. 그렇긴 해도 요즘엔 일희일비의 격차가 너무 심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특히 널뛰기의 한복판에 있는 감독들의 머릿속은 어떨지 걱정될 때가 있다.

10명의 감독 중 최근 가장 많은 비난에 시달리는 사람은 LG 양상문 감독일 것 같다. LG 팬들은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극성이다. LG 팬들로서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9위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불과 7개월 전을 돌이켜보자. 많은 팬들이 양 감독의 지도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 감독은 최하위였던 팀을 지난해 5월부터 맡아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오르게 하더니 불가능할 것 같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일궈냈다. 프로야구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 같은 드라마였다.

안타깝게도 양 감독은 앞으로도 욕먹을 일이 많이 남은 것 같다. 지금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카드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팀 성적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병규(9번) 정성훈 이진영 박용태 손주인 등 팀을 이끌어 왔던 30대 중후반의 베테랑들이 모두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재작년과 작년은 이 베테랑들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해 ‘가을 잔치’에 나갈 수 있었다.

거꾸로 말하면 그게 LG의 한계이기도 했다. 베테랑의 힘만으로는 모든 팀의 목표인 우승까지 가기엔 2%가 모자란다. 현재 모든 팀이 뛰는 야구, 빠른 야구를 추구하는데 베테랑이 많은 LG는 그런 활력이 부족했다.

‘강제 리빌딩’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이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인 이유이기도 하다. 양 감독 역시 이 같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양 감독은 “베테랑들에게는 스스로가 먼저 포기하기 전까진 기회를 준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함께 성장해야 팀이 강해진다. 우연히 그런 상황이 됐고 이제는 어린 선수들이 주어진 기회를 잡을 차례다. 그들의 선전은 베테랑에게도 자극이 된다. 베테랑과 신예가 어우러져야 진정한 강팀이 된다”고 말했다.

26, 27일 kt와의 경기에서 형님들을 대신해 출전한 채은성 나성용 양석환 황목치승 문선재 이민재 김용의 등 젊은 선수들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류현진이나 이종범 같은 ‘천재’가 아닌 한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다. 용이 될지, 이무기가 될지는 경험 속에서 판명된다. 그 과정에서 승리보다 패배가 많을 수 있다. 양 감독은 단호했다. 그는 “어차피 감독은 욕먹는 자리다. 팬들의 비난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 내년, 후년 장기적으로 강팀이 되려면 장기적인 포석으로 팀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기서도 역시 팬심(心)이 중요하다. 승패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LG호는 방향을 잃기 쉽다.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암흑기(2003∼2012년) 시절 LG는 새 감독을 선임할 때마다 당장의 성적보다 장기적인 팀 구축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막상 시즌에 돌입하면 눈앞의 성적을 갈구했고, 그 악순환의 소용돌이가 10년이나 지속됐다. 때로는 조용한 응원이 진정으로 팀을 위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지난해 시즌 중반 지휘봉을 잡은 양 감독은 사실상 LG의 1년 차 감독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