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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매드맥스와 잔혹동시

입력 | 2015-05-28 03:00:00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중 한 장면.

1. 한 초등학교 교실. 선생님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별한 점은 뭘까”라고 물었다. 아이들이 “생각을 할 줄 알아요”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아요” 같은 유식한 답들을 쏟아내자 선생님은 “그렇지” 하고 끄덕이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이때 머리가 매우 큰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의기양양하여 외쳤다. “인간만이 똥을 싼 뒤 똥구멍을 닦아요.” 아이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려 교실은 난장판으로 변했고, 싸늘한 표정의 선생님은 당구 큐대를 잘라 개조한 초강력 몽둥이로 그 아이의 엉덩이를 다섯 대 풀 스윙으로 때린 뒤 “당장 교실 밖으로 나가! 들어오지 마”라고 소리쳤다.

그 아이는 수십 년 전 초등생 시절의 나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좋아했던 나는 평소 ‘왜 인간만 밑을 닦을까’ 하고 궁금해했고 마침 수업시간을 빌려 나의 놀라운 지론을 밝힌 것인데, 선생님은 나를 인간이 아닌 짐승 취급을 해버린 것이다.

창의성은 알고 보면 ‘규격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경계가 없는 어떤 새롭고 뛰어난 생각과 행동능력으로 창의성을 정의하면서도 실제론 발랄하고 멋진 어떤 것으로만 창의성을 구획 짓는다. 그러니 회사 팀장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하라. 브레인스토밍을 하자”고 부하직원들을 독려하고는 막상 회의시간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래서 요점이 뭐냐”면서 몰아세우는 자가당착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궁금하다. 왜 창의와 상상은 오로지 목표 지향적으로, 밝게, 산뜻하게, 그리고 아름답게만 발휘되어야 하는 걸까.

2. 최근 개봉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라는 영화를 보면서 기겁을 했다. 핵전쟁으로 멸망한 22세기 물과 기름을 놓고 생존자들이 벌이는 약육강식의 지옥도를 그리는 이 영화는 두 시간 내내 팝콘 한 개 집어먹을 짬도 주지 않을 만큼의 강렬한 에너지로 밀어붙인다. 이건, 미친 영화다. 펑크적이고 동물적인 상상력으로 가득 찬 이 불편한 영화를 만든 감독은 1979년 ‘매드맥스’란 미친 감성의 영화로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조지 밀러. 그는 ‘매드맥스3’(1985년) 이후 30년 만에, 그것도 나이 일흔에 새로운 매드맥스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어둡고 기괴하며 파괴적인 상상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알았다. 거장은 나이가 들수록 철드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거장은 어딘가로 수렴되고 정리되어 가는 존재도 아니란 사실을. 죽을 때까지 규정되지 아니하면서 지독한 혼돈의 세계로 신나게 돌진하는, 불안하고 낯설고 미친 존재가 진짜 거장이다!

3. 얼마 전 열 살짜리 초등 여학생이 낸 시집 속 시(詩)가 적잖은 언론으로부터 ‘잔혹동시’라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거리가 되었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이렇게/엄마를 씹어 먹어/삶아 먹고 구워 먹어’ 같은 내용이 섬뜩한 삽화와 함께 실리자 많은 어른들은 식겁을 했고, 결국 시집을 낸 출판사가 사과문을 내고 시집을 전량 회수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난 이 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진 않지만, 시가 바람직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난 반대한다. 왜 우리는 상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걸까. 왜 ‘어린이다운’ 상상과 ‘잔혹한’ 상상으로 구분하는 걸까. ‘학원에 24시간 가고 싶어 안날이 났어요/돈 대주는 엄마 아빠에게 감사해요/나 꼭 서울대 가서 부모님 은혜 오백 배로 보답할 테야’ 뭐 이런 시라도 써야 아이답다는 얘기 같은데, 이건 동시(童詩)의 개념을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안 것이다. 어린아이의 정서가 늘 평화롭고 따사롭고 가치 순응적인 것은 아니란 말이다.

상상과 창의는 근원적이고 동물적이며 본성적이다. 인간 상상과 행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는 아름답지 아니한 금기로 가득 찼다. 아버지를 죽이고 권좌에 오른 크로노스는 자신도 아버지 꼴이 될 것이 두려워 자식들을 잡아먹는다. 아버지를 죽인 뒤 어머니를 아내로 취한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알을 뽑아낸다. 그러면 이것은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그리스 나쁜 신화’ 혹은 ‘그리스 잔혹 신화’, ‘그리스 엽기 신화’로 분류해야 하는가 말이다.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은 B급 호러물 ‘고무인간의 최후’로 데뷔하였다. 인간을 먹어치우는 외계인들을 도끼, 톱 등 각종 도구로 신나게 도륙하는 지구인들의 모습을 담은, 제목부터 삼류인 이 영화는 ‘맨 정신으론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다’란 혹평을 받았지만, 악취미적인 피터 잭슨의 상상 유전자는 결국 ‘반지의 제왕’에서 날개를 펴면서 ‘호러 감성이 접목된 기괴한 판타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탄생시켰다.

나쁜 행동은 있어도 나쁜 상상은 없다. 잔혹도 기괴도 엽기도 상상력이다. 낯설고 미친 것들의 말도 안 되는 자극을 비난하고 두려워하면서 세상은 스스로 닮아가고 진화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