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간판급 아나운서로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황수경이 최근 사표를 내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17년을 ‘열린음악회’와 함께했던 그가 마이크를 내려놓기까지의 남모르는 고민과 새롭게 꿈꾸는 미래,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을 들여다봤다.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3월 31일 ‘열린음악회’ 녹화를 끝으로 KBS 아나운서로서의 공식 활동을 마감한 황수경(44)에게도 ‘퇴사’는 방송과의 영원한 작별이 아니라 또 다른 도전을 위한 첫발이다.
“올 들어 전환점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어요. 대학 4학년 때 입사해 지금껏 KBS 안에만 있었고 ‘열린음악회’의 MC로 17년간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게 내 삶의 전부인가’라는 회의가 들었어요. 안정된 직장에서 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장수하는 것도 더없이 감사한 일이고 의미가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저만 한자리에 안주하는 것 같아 도약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졌어요. ‘이제 나가서 깨지더라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자. 20년 넘게 열과 성을 다해서 정말 후회 없이 일했으니까 앞으로는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춘을 오롯이 바친 회사를 나온 거예요.”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워낙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남편도 보수적인 성향이라 제가 좀 답답하리만치 성실한 스타일이에요. 남한테 싫은 소리를 요만큼도 듣기 싫어서 뭐든 대충 하지 못하고, 주어진 일은 직접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주 피곤한 성격이지요. 그렇다고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회사 일에 농땡이 부리지 않고, 뭘 맡겨도 책임감 있게 했더니 고가 관리가 잘돼 승진이 빠른 편이었어요. 그래서 ‘쟤는 임원까지 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사실 그가 사의를 품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3년 KBS에 입사한 후 그는 ‘VJ특공대’ ‘열린음악회’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와 사측 모두에 신뢰감을 주는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늘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입사해서 한 번도 마음 편히 휴가를 보낸 기억이 없어요. ‘VJ특공대’를 진행할 당시에는 남편과 처음 해외로 휴가를 갔다가 회사에서 찾아 저만 먼저 귀국한 적도 있어요. 그때는 휴가를 제가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로 생각지도 못했어요. 회사에서 부르는데 안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남편은 제가 얼마나 답답한 사람인지 아니까 너그러이 이해해줬지만 저는 모처럼의 휴가를 망쳐 몹시 미안했죠. KBS ‘한중가요제’도 제가 1회부터 10회까지 진행했는데 한번은 임신 7개월이라 배가 남산만 한데도 무대에 섰고, 아기 낳고 한 달 만에 중국으로 날아간 적도 있어요. 사장님이 제가 MC를 맡을 거라고 중국 측에 말해 그 약속을 지키려고 갔던 거죠. 그렇게 살다 보니 10년 주기로 고비가 오더군요. 다행히 2004년에는 모든 프로그램을 내려놓고 1년간 미국 연수를 다녀온 게 재충전이 돼서 그 힘으로 다시 10년을 견뎠는데 올해는 더 버틸 재간이 없었어요. 최근 몇 년간 변화에 대한 욕구가 극에 달한 터였거든요.”
예전부터 회사를 떠날 시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오던 그는 원래 2013년 11월 ‘열린 음악회’ 1천회 방송 당일을 디데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계획은 그 무렵 불거진 ‘찌라시 사건’으로 변경됐다. 한 방송 매체가 증권가에 떠도는 이야기를 근거로 그와 남편의 불화설을 확인 절차 없이 보도한 것. 그는 “그 일로 퇴사할 기회를 놓쳤다. 그때 일을 내려놓으면 소문이 기정사실화될 수 있어서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17년간 품은 ‘열린음악회’는 “인생의 가장 큰 조각”
‘열린음악회’는 그의 두 자녀보다 더 긴 세월을 그와 함께한,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다. 남편과 한창 사랑을 키워가던 1998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니 그의 결혼 생활과도 맥을 같이해온 셈이다. 그에게 ‘열린음악회’는 어떤 의미인지 묻자 “오롯이 내 청춘 다요, 인생의 가장 큰 조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후임자가 ‘열린음악회’를 처음 녹화하던 날, 친한 후배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열린음악회’ 작가들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그 친구들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열린음악회’ 출장 일정이 하도 버거워서 ‘이제 출장을 안 다닐 수 있겠구나, 정말 긴 세월을 할 만큼 해서 그만둬도 괜찮겠지’ 했는데 그 공허함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어느새 그의 커다란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화보 촬영을 위해 평소보다 짙게 한 눈 화장이 이내 못쓰게 됐다. “아줌마가 돼서 그런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는 그는 ‘열린음악회’를 진행하며 그를 울고 웃게 만든 출연자와 관객들을 떠올리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정말이지 어떤 날도 인상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3월부터 10월까지는 지방 출장을 많이 다녔어요. 장마철이 끼어 있어서 외부에서 촬영할 땐 좋은 날씨인 적이 별로 없어요. 비 온 날이 절반 이상이었어요. 몇 년 전 청송에 갔을 땐 무대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어요. 그런데도 그 동네 어르신들이 저희 음악회를 보려고 낮부터 꼼짝도 않고 기다리셨어요. 결국 그날은 날씨가 너무 나빠서 평소보다 서너 시간 늦은 밤 10시에 공연에 들어갔어요. 그때까지 자리를 지킨 어르신 청중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아주 오래전 스웨덴 출신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가 선사한 무대도 잊을 수 없어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를 겪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천상의 목소리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나요. 몇 해 전 가수 바다가 모친상을 당했는데도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그날은 바다보다 제가 더 많이 울었죠.”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책도 많이 봐요. 인문학까지 폭넓게 읽어야 하는데 소설 중독이에요. 최근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죄다 뒤져 읽었어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보고 나서 그 작가에게 반했거든요. 소설이 남는 건 별로 없지만 스트레스 푸는 데는 최고죠. 그가 쓴 ‘가면산장 살인사건’도 재미있었어요(웃음).”
탁해진 마음과 비뚤어진 몸, 요가로 바로잡아
들쑥날쑥한 방송 스케줄 속에서 건강을 지키려면 운동은 필수. 예전에 기 치료를 3년간 배웠다는 그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무조건 요가학원에 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저녁에 한 번 더 가는 식이다.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서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인데 요가를 하다 보니 긴장을 풀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그동안 자잘하게 신경 쓰이는 일을 많이 겪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위기가 아니거든요. 종교의 힘에 매달려보기도 했지만 운동만큼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것도 없더라고요. 요즘처럼 빈둥대는 느낌을 가져본 게 처음이에요. 2004년 연수차 미국에 갈 때도 남편이 ‘잘 노는 것도 잘 사는 것’이라고 조언해줬어요. 남편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일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데, 저는 미국에 가면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거든요.”
요가 덕에 쉽게 고쳐지지 않던 불면증도 해소됐다. 남편과 아이 등 어떤 생각에 꽂히면 뜬눈으로 밤을 새울 정도로 불면증이 심했던 그는 현재 하루 5시간 이상 숙면을 취할 정도로 잠을 잘 잔다. 아이들의 등교를 챙기고, 주말에는 입주 가사 도우미 대신 직접 요리 솜씨를 발휘하는 것도 그가 회사를 그만둔 후 달라진 면면이다.
방송을 진행하며 메이크업에 지친 피부를 달래기 위해 그는 요즘 웬만하면 민낯으로 지낸다. 그래서일까. 잡티 없이 고운 피부가 도드라져 보였다. 고운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그가 배시시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화장발이에요. 하하하. 화장을 지우면 기미가 눈 밑과 양 볼에 넓게 퍼져 있어요. 잦은 출장의 여파로 판다가 됐죠. 그나마 화장으로 위장이 가능한 건 피지가 별로 없고 얇은 피부를 지닌 덕분이에요. 그래서 트러블은 좀처럼 일지 않는 반면 주름이 잘 생기고 잡티가 많아요. 잡티를 없애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데 효과는 별로 없어요.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물광 피부 만들기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전체적으로 정화가 필요해요. 탁해진 마음도, 비뚤어진 몸도.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 요가를 택한 것도 체형 보정이 필요해서예요. 지금은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게 중요해요. 방송 일이 안 들어와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고, 올해 ‘중2’가 된 큰아이가 제 말에 따라주지 않아도 중심을 잡고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요(웃음).”
남편과 대화 즐기며 스트레스 풀어
그는 1999년 최윤수 검사(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들 원준이는 중학교 2학년, 딸 지안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는 “내 본분 중 가장 자신 없는 일이 자녀 교육이다. 교육만큼 힘들고 어려운게 없더라”고 토로했다.
“특별한 교육법이 없어요. 남들처럼 학원에도 보내고 시류를 많이 따라요. 남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돼요. 큰아이는 자존감이 강해서 제가 시켜도 본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안 해요. 둘째는 오빠의 시행착오를 봐서 저한테 야단맞을 행동을 안 하고요. 그런 둘째가 예쁘긴 해도, 가슴이 아린 건 첫째를 생각할 때예요. 첫째가 말을 안 들으면 저는 감정 조절이 안돼서 참다가도 언성을 높이게 돼요. 근데 남편은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이 없어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고 믿어주는 자상한 아빠죠.”
그는 남편을 “바르고 결이 고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또 “교직에 몸담았던 시어머니의 영향으로 가족을 늘 다정다감하게 대하고 평정심을 잘 유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은 그에게도 ‘아이를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라.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라. 엄마가 아등바등하면 아이는 그 이하밖에 안 된다’는 조언을 자주 한다.
“남편은 저와 교육 스타일이 확실히 달라요. 저는 틈이 생기면 불안한데 남편은 여백을 주라고 해요. 충분히 스트레스 풀게 하고 나서 공부를 시켜도 늦지 않다면서요. 처음에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잔소리로 여기는 아들을 보면서 남편의 조언대로 그냥 뒀어요. 제가 큰아이에게 믿는 구석도 있고요. 전술을 바꿨더니 사이는 좋아지더라고요. 또 그동안 아이가 열심히 안 하면 못 견뎌한 것이 제 자존심 때문이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죠.”
평소 이들 부부는 대화를 많이 한다. 둘 다 언행에 민감한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밖에서는 무조건 말과 행동을 삼가고 집에서 둘만의 밀담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푼다. 결혼할 때 두 사람이 합의한 약속도 ‘자신의 업무나 소속 기관에 대한 이야기는 밖에서 절대 하지 말자’였다.
“저희는 어디서든 언행을 조심하는 게 몸에 배었죠. 대신 남편과 있을 때는 시시콜콜하게 대화를 하죠. 제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말하면 남편은 완전 제 편이 돼서 맞장구를 쳐줘요. 남편은 바깥일을 잘 얘기하지 않지만 어쩌다 섭섭한 일을 토로하면 저도 열을 올리며 맞장구를 치고요. 그런 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땐 남편이 과하다 싶을 만큼 리액션을 크게 해서 제가 ‘어디가서 말하면 안 된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고 당부할 정도예요. 무엇보다 남편에게 높이 사는 건 차분한 성격과 냉철한 판단력이에요. 제가 선택의 기로에서 우왕좌왕할 때 남편이 항상 현명하게 결정해주거든요. 그 결정이 틀린 적이 거의 없어요.”
서로 다른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이 법조인과 방송인 커플이 평소 어떤 취미를 함께 즐길지 궁금해하자 황수경은 “같이 TV를 보는 것밖에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요리 프로그램을 좋아하니까 남편도 즐겨 봐요. 드라마도 같이 보고요. 예전엔 제가 딸하고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저런 막장 같은 걸 왜 보느냐고 하더니 이제는 방영 시간 맞춰 들어와서 같이 보죠(웃음).”
신동엽에게 개인 교습 받고 싶어
인생의 절반을 KBS 아나운서로 살아온 그는 모처럼 주어진 휴식 시간을 당분간 충분히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도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각오다.
“음악회라면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오랫동안 ‘열린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청중뿐 아니라 저 역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기회가 온다면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눈뜨고 싶어요. ‘오늘 뭐 먹지?’ ‘최고의 요리 비결’ 같은 요리 프로그램도 하고 싶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토크쇼를 하고 싶어요. 삶의 경험과 사람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는 그런 프로그램이요. ‘힐링캠프’나 ‘해피투게더’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불러만 준다면 그 역시도 언제든 영광이에요. 제가 아는 PD들이 저한테 예능감이 있대요. 은근히 웃기다고 그러던걸요. 그게 다 아줌마의 힘일 거예요. 전에는 싫었는데 지금은 주책을 좀 떠는 것도 재미있더라고요. 하하하.”
홀로서기에 나선 그가 앞으로 꿈꾸는 방송인 상은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다가가는 진행자’다. 그런 방송인이 되기 위해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는지 묻자 그는 언급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결국 한 사람을 지목했다. 바로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채널, 종합편성 채널을 종횡무진 누비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개그맨 출신 방송인 신동엽. 그는 신동엽을 “늘 기대가 되고, 한 번도 참신하지 않은 적이 없는 천재 방송인”이라고 평가하며 “그가 가진 재치와 순발력을 배울 수 있다면 개인 교습을 받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홀로서기 10년 차가 되는 2025년, 그는 과연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는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세월을 즐기는 사람이고 싶어요. 좀 거창하다 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문화 예술 계통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크로스오버 음악을 확산시키는 일이나 소외 계층을 돕는 문화 예술 공연도 좋고, 작은 음악회라도 제가 설 자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 장소협찬 · 소호앤노호 아미엘리 | 의상협찬 · 랑방컬렉션 르베이지 | 헤어&메이크업 · 이민 김은진(W퓨리피) | 스타일리스트 · 이종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