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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밀림 속의 아이들, 온실서 큰 교사들

입력 | 2015-05-30 03:00:00

요즘 초등학교 교실 풍경 아세요?




교대에서 성적이 좋은 ‘엘리트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 늘어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성적은 좋으나 다양한 경험은 예전보다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오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나온 교대생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초등학교 교단에 선 지 3년째인 이모 여교사는 개학 이후 원형탈모로 고생을 하고 있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이 씨를 괴롭히던 증상이 다시 도진 것이다.

중고교 시절부터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고, 교대에 다니던 4년 내내 누구보다 좋은 선생님이 될 자신감이 넘쳤던 이 씨였다. 하지만 현장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5학년과 6학년 담임을 잇달아 맡으면서 ‘요새 아이들은 감당할 수가 없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부임 첫해 일부 남자 아이가 약한 아이의 머리를 붙잡아 책상 모서리에 내리찍거나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을 하는 것을 보고 이 교사는 경악했다. 야단을 치면 이 교사보다 덩치가 큰 아이들은 생소한 게임 이름을 줄줄이 읊으며 “거기 나오는 갱스터들이 다 이렇게 한다”고 코웃음을 쳤다.

지난해에는 여학생 몇 명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여학생을 하굣길에 찻길로 밀어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이 교사가 부모들에게 알리려고 하자 가해 학생들은 피해를 당한 아이가 다른 남자 아이와 주고받은 채팅 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비공개로 올린 사진 등을 스마트폰으로 캡처한 화면을 보여주면서 “얘가 친구의 남자 친구를 뺏었다. 당할 짓을 했다”면서 언성을 높였다. 친구의 계정을 해킹해서 뒷조사까지 했던 것이다.

스마트폰 게임이라고는 ‘애니팡’밖에 해본 적이 없고, 인터넷도 주로 학습 카페나 교사 동아리 정도만 들락거리는 이 교사는 이제 막 열 살이 넘은 아이들의 대화를 따라잡기 벅찼다. 지난 겨울방학 때 ‘올해도 6학년 담임을 맡으라’는 교감의 연락을 받은 뒤로 머리 세 곳에서 큰 원형탈모가 생겼다.

초등학교 교사는 예나 지금이나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지만 최근 10여 년간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교대 경쟁률은 더욱 치솟고 있다. 경쟁률과 동시에 합격선도 높아지면서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최고의 모범생들이 교대로 몰린다.

임용시험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에 교대를 목표로 하는 수험생들은 임용시험 합격률에 따라 교대를 서열화하기도 한다. 교대생들은 대학 4년간 일반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틀에 박힌 생활을 거쳐 초등학교 교사로 배출된다.

바른 생활에 익숙한 엘리트 교사들이 교단에 서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젊은 교사들이 지나치게 ‘범생이’처럼 살아온 탓에 70∼80%의 평범하거나 산만한 아이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로 교사들은 “공부는 잘하고 경험은 부족한 교사가 늘어난다”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특히 우등생의 길을 걸어온 신임 교사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을 가르치는 김모 교사는 “지방 여고를 나왔는데 제일 성적이 나빴을 때가 반에서 3등을 했을 때였고, 같이 교대에 다닌 친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면서 “교대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왜 아이들이 기본적인 수업도 못 따라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육면체를 놓고 선분과 선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가르쳐도 전개도를 펼쳐놓으면 이해를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이렇게 당연한 것을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됐다”면서 “몇 년 경험이 쌓여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신임 교사들은 생활지도에서도 애를 먹는다. 대부분 학창 시절에 부모나 교사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 초등학교 교사 4년 차인 임모 씨는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도 워낙 자유분방하게 자라기 때문에 교사가 훈계를 해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고집한다”면서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아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교사가 전혀 모르는 게임이나 사이트, 수위 높은 영상물 등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 교사가 제자들의 또래 문화에 깜깜인 상황이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가 많다. 경기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3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김모 교사는 “정식 임용 전에 잠시 방과후 강사를 한 적이 있는데 5학년 남자 아이 둘이 싸움을 했다. 험악하게 주먹다짐을 하는데 주변 아이들이 말리기는커녕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당황스러운 기억을 털어놨다.

노련한 교사들은 이런 신규 교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온실 속 화초’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단지 경험이 부족한 게 아니라 성장 환경에서 오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병식 서울교대부설초등학교 교장은 “20∼30년 전만 해도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교대에 들어왔고, 또 교대에 입학하면 다 교사가 되던 시절이었다”면서 “요즘은 대부분 자녀가 하나 또는 둘인 중산층 이상의 가정의 우수한 아이들이 교사가 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예전보다 좁아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교대부초는 신규 교사와 기존 교사 간에 멘토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륜 있는 교사들에게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력과 생활지도 노하우를 전수받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행 초등 교원 임용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교장은 “대체적으로 요즘 교대에 합격하는 인재라면 지적 수준은 다 우수하다고 봐야 한다”면서 “이들이 대학 생활 동안 임용시험에 쏟을 시간과 노력을 다양한 체험을 하는 데 쓰도록 교육과정과 임용제도를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책상머리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교육 봉사나 교생 실습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육감들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13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교사 선발은 필기시험 위주에서 벗어나 전문성, 윤리성, 사명감, 인성을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성적이 좋은 교사보다는 경기도의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는 교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교육청은 내년부터 임용시험에 인문학 면접을 도입한다. 다양한 아이를 이해하고 지도하려면 예비교사들이 임용시험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문 소양부터 쌓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은택 nabi@donga.com·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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