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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왕의 삶에 든 회의, 신념토론으로 극복될까…

입력 | 2015-05-30 03:00:00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샤피크 케샤브지 지음/김경곤 옮김/428면·1만8000원·궁리




그리 멀지 않은 한 왕국에서 사흘 동안 ‘신념 토론대회’가 개최된다. 왕가의 공주는 백혈병과 투병 중이고 왕은 삶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국정보다는 종교에 관심이 쏠려 있다. 왕비는 왕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뒤 불륜에 빠져 있다. 토론대회는 과연 이런 삶의 고비를 극복할 만한 단단한 토대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토론대회의 주요 발언자로는 신앙심이 깊은 신학자 겸 수학자와 동양 사상에 정통한 젊은 요가 선생,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인 생물학자가 나선다. 수학자는 세상이 신에 의해 창조됐다고 말하는 일신론, 요가 선생은 자연과 만물이 본래 그대로 존재해 있었다고 보는 일체론, 생물학자는 세상이 과학적 원리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하는 유물론을 대표한다.

세 발언자는 각 세계관의 관점에서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뇌와 의식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나는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가?’를 큰 주제로 사후세계와 영혼의 존재 여부, 개인이 세상과 공존하는 방법 등에 대해 마치 링에 오른 권투선수처럼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이들의 토론은 결국 죽음과 희망, 돈, 성(性) 같은 인생과 직결된 문제들에 대해 각 세계관이 내놓는 답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철학적 질문이 난무하는 토론대회를 국왕을 시해하려는 테러 사건과 나란히 배치해 추리소설 형태로 긴박감 있게 엮어낸다. 등장인물이 겪는 다양한 사건과 감정은 때로 토론대회 속 질문으로 돌아가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추리소설다운 재미를 느끼며 줄거리 위주로 후딱 읽은 뒤, 책 속 질문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좋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