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
지도란 실제의 영토를 몇만분의 1로 축소하여 그린 이미지 자료이다. 축도(縮圖)의 비율이 낮아질수록, 다시 말해 몇천분의 1, 몇백분의 1로 내려갈수록 지도는 점점 더 세밀하게 되어 실제의 땅과 비슷해질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1 대 1의 비율이 되면 거대한 지도는 실제의 영토를 정확히 뒤덮게 될 것이다. 그때 영토와 지도는 더이상 구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가 완전히 실재를 뒤덮어 버린 현대 사회의 더할 나위 없는 은유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음식점에 가면 요리 사진을 찍고, 자기 얘기를 시시콜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린다. 그 빈도수가 점점 빨라져 1초 단위로 내려간다면 글자 그대로 실생활을 뒤덮는 가상의 현실이 될 것이다. 과연 노르웨이의 한 TV 방송은 달리는 열차나 유람선에서 보이는 풍경을 특별한 편집 없이 그대로, 짧게는 수시간에서 길게는 100시간 넘게 방영하는 야심 찬 기획을 했다. “스마트폰만 가지고는 살 수 없잖아요. 누구나 마음속엔 느리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죠”라고 해당 프로의 PD가 말했다지만, 사람들은 10시간이 넘는 그 프로를 모두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었다. 이건 슬로 라이프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를 뒤덮는 지도의 문제인 것이다.
이미지는 단순히 실재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아 보인다. 소위 하이퍼리얼(hyperreal)이다. TV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연예인 자녀들의 일상적인 생활상, 혹은 외딴 시골집에 가 밥 지어 먹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보인다. 그것이 철저하게 준비된 가상현실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모르거나 혹은 모르는 척하고 즐긴다. 실재가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리얼은 사라지고 리얼이 아니면서 리얼보다 더 리얼한 하이퍼리얼이 대신 들어섰다.
지도에 뒤덮인 제국이 결국은 파괴되고 썩어 없어졌다는 보르헤스의 우화가 조금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