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동시통역사이자 칼럼니스트 요네하라 마리(1950∼2006)는 독신으로 지내며 유기견과 길고양이를 입양해 함께 사는 이야기를 에세이집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에 담았다. 그의 책 제목을 빌려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붙인다면 ‘인간 암컷은 필요 없어’다. 물론 문화의 수요층인 여자들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TV를 켜면 남자 세상이 펼쳐진다. 예능은 남자 일색이다. 남자들이 아기를 돌보고 다 자란 딸과 소통하는가 하면, 배낭여행을 떠나거나 산골과 섬에서 밥을 짓고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으며 고생을 한다. 액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던 미녀도 존재감이 흐릿해졌다. 뮤지컬은 남자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흥행 여부가 좌우되기도 한다.
인간 암컷의 출연이 금지된 분야도 있다.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19금 만화책이 많은데 거의가 미소년 간의 사랑을 다룬 BL(Boys love) 장르다. 여성들이 본다.
게다가 날로 격화되는 여성들의 경쟁심도 인간 암컷이 등장하기 어려운 문화를 더욱 부추긴다. 적잖은 여성이 ‘매사에 경쟁하는 여자’와 어떤 감정선을 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을 곧잘 만난다. 친절과 관심을 가장해 남자친구 혹은 남편 사정에 옷이며 화장품까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부러워하다가도 언뜻 내비치는 상대 여성의 공격성을 접할 때면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웃음을 지어도 마음이 언짢다.
그러니 혼자 즐기는 시간만큼은 꽃미남의 감동 이벤트 또는 어수룩한 남자들의 좌충우돌을 화면으로 보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만도 하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