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도, 이른바 公僕도
국민의 이익은 외면했다
기득권 고수 政·官·利 삼각편대
공무원연금 맹탕개혁도 모자라
행정부 시행령 수정권 확보
대통령이 국민과 한 편 되어
썩어빠진 제도개혁 할 순 없나
김순덕 논설실장
농반진반(弄半眞半)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서, 대통령이 그 시간에 시퍼렇게 깨어 있었다면 공무원연금법에 국회법 개정안까지 끼워 팔기 처리는 못 했을 것 같다. 야당 의원들에게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난 것이 출근이고 자는 것이 퇴근”이라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매일 불철주야(不撤晝夜) 만기친람해서도 안 되지만 ‘국회가 시행령 수정을 요구하면 정부는 따라야 한다’는, 악용 가능성이 빤히 보이는 국회 우위(優位)법이 통과되는 마당에 편히 잔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참모진이 국회 돌아가는 상황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 아니 전화보고라도 했다면, 또는 대통령이 새벽까지 지키고 앉아 여야 의원들에게 전화 한 통씩 돌렸다면 그런 법이 그렇게 통과됐을까 싶다. 여당 의원까지 거사를 벌인다는데 대통령이 여의도인들 직접 못 간단 말인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는 판에 박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을 촉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연금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 편에 서줄 사람은 그래도 대통령밖에 없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야당이야 원래 공무원, 노동단체 편이니 기대도 안 한다. 그러나 신규 임용자는 2018년부터 국민연금과 지급률을 같게 하고 향후 70년간 342조 원을 절감하는 정부의 셀프 개혁안에 대해 “미흡하다”고 퇴짜 놨던 새누리당이, “(공무원노조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꼭 관철시키겠다”던 김무성 대표가 국민연금과 통합도 없고 70년간 333조 원 절감이 고작인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하곤 야밤 쿠데타 하듯 방망이를 두드려버린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나 4대 구조개혁, 부패청산의 정치·사회개혁도 정관리에 판판이 막힐 것이 뻔하다. 원격진료 확대를 위한 의료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같은 대통령 역점 법안이 하나도 국회 통과되지 않은 걸 보면 안다. 공무원들도 관피아로 나갈 길을 대통령이 막았다고 복지부동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민과 한편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4의 혁명’으로 불리는 정부개혁,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거다.
이 땅의 공직자들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엘리트인 척하지만 세계경제포럼(WEF) 2014∼2015년 글로벌경쟁력지수를 보면 한국 정부와 제도의 수준은 144개국 중 82위에 불과하다. 중국(47위) 인도(70위)에도 뒤지고 그리스(85위)와 맞먹는다. 심지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한다는 공산국가 베트남보다 정책 결정의 투명성(133위·베트남 116위), 규제 개선의 법체계 효율성(113위·베트남 80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97위·베트남 49위)에서 뒤질 정도다. 민간이 열심히 뛰어 이 정도 유지하는 나라에서 관존민비 연금을 고집한 정관리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제도 경쟁력이 워낙 뒤처진 까닭에 제도를 고쳐 얻는 경제성장 기여도가 민간기업의 팔을 비틀어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보다 50%나 높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최근 연구 결과다. 국회가 법을 깔고 앉아 있으면 대통령령을 내려 규제개혁만 제대로 해도 성장률 상승효과를 44% 거둘 수 있다. 대통령이 잠든 사이 여야가 작당해 시행령 수정권을 통과시킨 건 그래서 더 괘씸하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도 대통령령이었다. 최근 미국의 센추리재단은 500만 불법이민자 보호 조치를 취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에 견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의회의 발목잡기를 비켜간 대통령들의 담대한 행정명령에서 나왔다”는 보고서를 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