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왼쪽으로 향했더라면….’ 400홈런까지 단 1개를 남겨둔 이승엽(삼성)이 31일 잠실 LG전에서 8회 무사 1루서 상대 2번째 투수인 좌완 신재웅의 커브를 잡아당겨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날리고 있다. 그러나 타구는 우측 파울폴 오른쪽으로 살짝 빗겨가며 파울홈런이 되고 말았다. 9회에는 고의성 짙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대기록 달성을 다음으로 넘겼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삼성-LG전
양상문 감독 “이승엽과 정상적 승부”불구
마지막 타석 스트레이트 볼넷…팬들 야유
이승엽 “사정 있을 것…충분히 이해한다”
‘400’.
● 정면승부 선언한 LG, 차분한 이승엽
상대편인 LG 양상문 감독은 경기 전 “이승엽과 정상적으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양 감독은 투수 출신이다. ‘피홈런 투수’로 역사에 남는 아픔을 안다. 그러나 승부를 피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다만 “경기 상황에 따라 1루가 비어있으면 고의4구가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우리 투수도 기록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제구가 흔들려서 볼넷을 줄 수도 있다”며 “그걸 대기록을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당사자인 이승엽은 차분했다. 경기 전 정해진 훈련을 모두 소화한 뒤 북적거리는 덕아웃을 피해 조용히 원정팀 라커룸으로 사라졌다. 399호 홈런을 치고도 “지금은 400홈런을 의식하기보다 타격감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했던 이승엽이다. 뜨거운 관심에서 한 발 물러나 스스로의 타격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은 듯했다. 오히려 삼성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감이 좋아 보인다. 이 경기에서 곧바로 치거나, 다음 3연전에서는 나올 것 같다”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 잠자리채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
당초 이날 관중석에 ‘홈런 잠자리채’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승엽이 2003년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인 56호 기록에 도전할 때, 그 홈런볼을 잡으려는 관중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야구장으로 몰려들었던 장면이 장안의 화제였다. 그러나 이번엔 예상이 빗나갔다. 실은 잠자리채를 준비했다 해도 야구장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KBO는 올 시즌부터 야구장 안전과 보안을 강화하는 ‘세이프(SAFE)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주류를 비롯한 1L초과 음료의 경기장 반입이 제한되고, 1인당 소형 가방과 소형 쇼핑백 1개씩만 소지해야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채가 위험 물품은 아니지만, 캠페인 규정에는 맞지 않는 물건이다.
● 다섯 번의 타석, 두 번의 아쉬움
경기가 시작되자 이승엽을 향한 관심은 더 높아졌다. 3루 쪽 삼성의 일부 팬들은 이승엽이 2회 첫 타석에 들어서자 기립박수로 국민타자를 맞이했다. 외야의 관중들도 이승엽의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펜스 앞까지 내려와 난간에 몸을 기대거나 자리에서 일어선 채 지켜봤다. 혹시라도 400호 홈런공이 날아올지 모르는 행운을 기대하는 듯했다.
● 마지막 타석은 스트레이트 볼넷, 이승엽 “아쉬움 없다”
그런데 삼성 타자들이 한 번의 기회를 더 만들어줬다. 8회 3점을 뽑는 과정에서 1번 나바로까지 와서야 이닝이 끝났고, 9회 선두타자 박한이가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다시 이승엽 앞에 마지막 한 타석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때 LG 투수 신승현이 이승엽에게 던진 공 4개는 모두 바깥쪽으로 확연하게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스트레이트 볼넷. LG 배터리에 쏟아지는 야유 속에 이승엽은 아쉽게 1루로 걸어 나갔다.
이승엽은 경기 후 “홈구장(2∼4일 포항 롯데전)에서 치라는 의미인 것 같다. 400홈런에 대해서는 의식 안 했는데 1개 남으니까 의식이 되더라. 팬들이 너무 큰 환호성을 보내준 덕분인 것 같다”며 “첫 타석에서 ‘아, 이제 하나 남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타석은 상대 팀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잠실|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