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소장 이식 성공… 이명덕 서울성모병원 교수
이명덕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소장 이식술이 국내에서 성공해 많은 단장증 환자들이 생의 희망을 갖게 된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소장 이식은 다른 장기 이식보다 어렵다. 다른 장기보다 면역 거부 반응이 강해 장기 이식 뒤 필수적인 면역억제제를 투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항상 변에 젖어 있어 오염에 취약하고 세균도 잘 자란다.
최근 병원에서 만난 이 교수는 “‘다른 장기는 되는데, 소장은 왜 안 되느냐’는 생각으로 밤낮없이 동물 실험에 매달렸다”고 연수 당시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쥐처럼 작은 동물로 시작했는데 5개월 동안 수십 마리가 모두 죽었다. 5개월이 지난 뒤 수술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소장을 이식한 쥐들이 점차 살기 시작했고, 그 뒤 원숭이 실험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연수 기간인 2년이 지나서 1985년 귀국해야 했다. 몇 년 뒤 유럽에서 소장 이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87년 독일, 1988년에 프랑스가 잇따라 수술에 성공했다. 이 교수가 연수를 갔던 피츠버그대도 1988년 이식에 성공했다.
이 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단장증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영양요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짧은 장으로 인해 식사로 영양을 충족할 수 없는 환자에게 투여하는 주사의 양, 영양제의 농도 등에 관한 연구였다.
2004년 당시 56세였던 여성 단장증 환자가 이 교수를 찾아왔다. 장간막혈전증(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 장이 썩는 병)으로 절제수술을 받아 소장이 50cm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소장 이식만이 환자의 살길이었다. 다행히 25세 딸이 소장을 떼주겠다고 했다. 딸의 소장 5m 가운데 1.5m를 잘라내 이식했다. 8시간이 걸린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식받은 환자의 소장 혈관을 연결하고 보니 색깔이 좋지 않았다. 혈류 장애 증상이 있어 보였다. 미세 현미경으로 혈관을 다시 잇는 2시간의 추가 수술을 진행했다. 이 교수는 “소장 이식 수술이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는 순간이었다”면서 “이제 국내 단장증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술받은 환자는 1년 뒤 신장에 무리가 와 신부전증이 생겼다. 독성이 강한 면역억제제 때문이었다. 신장 이식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환자는 7년 넘게 투석을 해오다가 지난해 가을 신장을 이식받았다. 소장을 줬던 그 딸이 이번에는 신장까지 내줬던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져 모녀는 현재 모두 건강하다.
▼ 단장증 환자, 정맥영양제 주사로 집에서 영양 관리 가능 ▼
단장증 환자에게는 소장 이식 수술이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하지만 이식을 받을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기다리기 위해서는 영양 상태가 중요하다.
단장증 환자는 장이 너무 짧아 영양이 흡수되지 않고 배설된다. 필요한 모든 영양소는 특수 조제된 인공영양주사제를 혈관으로 직접 넣는 정맥영양법으로 공급한다. 이명덕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이 정맥영양제는 농도가 아주 높아 보통의 혈관주사로는 혈관염이 생겨 우리 몸 가운데 있는 대정맥에 주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를 계속 입원시켜 둘 수도 없다. 환자가 생업에 종사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2주 1회 외래진료로 상태를 점검하고 2주간의 영양제와 약물 처방을 받아 집에서 관리하는 재가 정맥영양법이 개발됐다. 재가 정맥영양법에 따라 환자는 잠자는 동안에 하루 분량의 영양주사를 맞는다. 가정에서 효과적으로 영양 관리를 받은 환자가 이식을 받았을 때 더 상태가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교수는 “정맥영양법은 영양소를 적절하게 섞는 기술, 주사 통로가 되는 카테터(가는 관)의 재료 개발과 제조 기술, 세균 감염 방지법 등을 포함한 첨단 의술”이라며 “오늘날 다양한 소장 이식 수술은 영양 집중 치료의 기반 위에서 꽃을 피운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