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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의 달콤쌉싸래한 정치]‘원칙과 변칙’의 공생

입력 | 2015-06-01 03:00:00

화성男 김무성, 금성女 박근혜… 외골수 ‘PP’가 원칙 이야기하면
협상론자 ‘무대’는 변칙으로 화답
국회법 싸고 또 냉랭해진 두 사람, 승자없는 게임에 ‘PP’의 선택은…




이재명 기자

‘PP’(프레지던트 박근혜의 약자)와 ‘무대’(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별명)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서로의 정치 언어를 이해 못한다. 외골수 PP가 ‘원칙’을 얘기하면 협상론자 무대는 ‘변칙’으로 화답한다.

각자의 정치적 멘토인 박정희와 김영삼만큼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는 조합이다.

지난 대선 때인 2012년 10월 PP의 지지율이 하강 곡선을 그렸다. 당 중앙선대위 의장단은 PP에게 무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건의했다. 사흘간 답이 없던 PP가 무대에게 제안한 자리는 실권이 없는 공동선대위원장이었다. 무대는 PP에게 “이제 일을 하고 싶다”고 애원했다. 그제야 PP는 총괄선대본부장 자리를 줬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PP는 무대를 경계한 것이다.

늘 겉도는 두 사람의 관계 탓에 단순 해프닝이 당청 갈등의 불씨로 번지는 일도 잦다. 1월 ‘수첩 사건’이 그랬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카메라에 찍힌 무대 수첩엔 ‘(정윤회) 문건 파동 배후는 K(무대), Y(유승민 원내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이 발언을 했다는 청와대 행정관은 면직 처리됐다. 이어 무대가 청와대를 겨냥해 일부러 수첩을 깠다는 ‘음모론’이 뒤따르면서 양측의 신경전은 가열됐다. 여권에선 무대가 “PP만 수첩이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수첩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고 해 ‘이첩제첩(以帖制帖·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의 이이제이를 빗대 만든 말)’이란 신조어가 나돌았다.

그런 두 사람이 PP의 남미 순방 출국 당일인 4월 16일 단독회동을 한 건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사퇴 문제로 PP의 순방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PP가 무대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데탕트’는 오래가지 않았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그들을 다시 갈라놨다. PP가 여야 합의안을 직접 비판하자 무대는 공개적으로 협상 재량권을 요구했다. PP의 답은 무대의 파트너인 조윤선 전 대통령정무수석의 사표 수리였다. PP가 무대에게 보낸 레드카드란 뒷말을 낳았다. 마침 정무수석실은 지난 주말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한 옛 동료들을 초대해 ‘홈커밍 데이’를 열 계획이었다. 그런데 손님을 맞을 정무수석이 행사 열흘 전 진짜 자기 집으로 가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됐다.

이번엔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사퇴해야 하나. 정부가 만든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청와대가 들끓고 있다. 이 실장은 새누리당 지도부에 “공무원연금법 처리가 무산되더라도 국회법 개정은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국회에 뒷덜미를 잡힌 정부로선 마지막 비상구마저 봉쇄당한 기분일 것이다. 더욱이 PP의 최대 업적으로 여긴 공무원연금 개혁마저 욕을 먹는 마당에 혹만 붙였다. 돈 봉투를 깔아줘야 움직이는 ‘함지기’ 근성의 야당을 보면 여당 처지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이제 공은 PP에게 넘어갔다.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무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 무대가 버틴다면 되치기 당할 위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게임에 승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PP가 이기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가 흠집 난다. 무대는 지난 대선에서 1469만 표를 얻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여론조사에서 처음 앞선 여권 주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무대가 PP를 이겨도 무대는 흠집 난다. 무대의 고공행진은 PP의 고정 지지층이 있기에 가능하다. 무대는 당분간 PP의 호위무사를 자처할 운명인 것이다.

비록 과녁을 벗어났더라도 이미 화살은 날아갔다. 누구도 부러진 화살로 다음 과녁(PP의 개혁이든, 무대의 대선이든)을 맞힐 순 없다. 서로의 주장에 공감하고 명분을 살려주는 공생의 길만이 미래를 담보한다. ‘원칙과 변칙’이 조화를 이루면 여권의 스펙트럼은 그만큼 넓어진다.

이명박(MB) 정부 집권 3년차인 2010년 6월에도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여권은 최악의 갈등을 빚었다. 두 달 뒤 MB와 PP의 극적 회동이 없었다면 여권은 쪼개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MB 청와대의 한 인사는 “흔히 PP를 설득하는 게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정반대다. MB를 설득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그만큼 현직 대통령이 미래권력을 인정하긴 쉽지 않다. PP 청와대 참모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