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내의 자격’과 ‘밀회’에 이어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연출가 안판석. 2003년 안정된 직장인 MBC를 박차고 나와 드라마 제작사 대표를 거친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치열한 리얼리즘의 대가’가 된 그를 보고 있으면 ‘연출자의 자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된다. 풍문 속에 진실이 주는 감동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대한민국 상위 0.01% 특권층의 삶을 풍자하는 SBS 30부작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어느덧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켜온 이 드라마는 명콤비로 정평이 난 안판석(54) PD와 정성주(59)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이어서 방영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이런저런 갑질 사건이 일어나 서민들을 공분케 했어요. 사람들의 분노가 순식간에 발화하는 화약처럼 터져나왔죠. 그 분노가 정당한지 여부는 개개인이 판단할 몫이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불의하고 억울한 경험들을 겪었기에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겁니다. 드라마는 그 시대상을 담아 표현해야 하고, 그걸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서 의식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풍문으로 들었소’를 기획한 것도 그런 차원이에요. 그동안 풍문으로만 듣던 권력층의 속물의식을 꼬집고, 최근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한 ‘갑질’ 논란에 함께 분노하고 싶었어요. 이 작품은 단순히 갑질만 꼬집지 않아요. ‘을질’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예요.”
안 PD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배우들이 이토록 믿고 따르는 것일까. 그가 20년 넘게 현장을 누비며 큰 울림을 주는 드라마를 계속 만들어내는 비결은 뭘까. 많은 궁금증을 안고 볕이 유난히 좋은 늦은 봄날 오후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한 ‘풍문으로 들었소’ 세트장을 찾았다.
안판석 PD는 ‘풍문으로 들었소’ 세트장에서 촬영을 지휘하며 한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부드러운 한마디로 배우들을 긴장시키는 그의 카리스마는 진심어린 배려와 격려에서 나오는 듯했다.
명콤비 정성주 작가와 관심사 비슷하고 얘기 잘 통해
마침 안 PD는 지영라(백지연)의 집에 있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보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와 캐주얼한 차림,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촬영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런데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였다. 목발 없이는 거동하기 힘든 처지인데도 그는 불편한 기색 없이 현장을 돌아다녔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서.
어쩌다 깁스를 하게 된 건가요.
촬영하다 좀 다쳤어요. 뼈에 금이 갔대요.
세트장이 복잡하고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어서 목발 짚고 다니기 힘들 것 같아요.
두 발로 다니는 것보다야 불편하지만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몸을 쓰지 않아야 뼈가 빨리 붙는다는데 어쩌겠어요. 촬영이 급한걸.
만족스럽지 않아요. 이 작품은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어서 디테일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다시 찍으면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이 작품에서 다루는 갑질과 을질 중 뭐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갑질도 문제지만, 갑에게 당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을질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을질에도 급이 있어요. 갑에게 알아서 몸을 낮추는 것을 보통 을질이라고 하는데, 자신보다 더 못한 을에게 갑질을 하는 것이야말로 아주 저급한 을질이죠.
그럼 정성주 작가와의 관계에서는 누가 갑인가요.
정 작가가 갑이지요(웃음). 저보다 연장자기도 하고, 촬영도 대본이 있어야 할 수 있으니까요. 정 작가와는 ‘장미와 콩나물’(1999), ‘아줌마’(2000),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 5편을 함께했어요. 보통 인연은 아니죠.
출연 배우는 모두 큐브처럼 맞아떨어져야
안 PD와 정 작가의 인연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 PD는 그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 ‘하늘이여’를 우연히 접하고 정성주라는 이름 석 자를 뇌리에 새겼다. “작품 내용도, 당선 소감도 재미있었고, 신문에 난 사진 속 얼굴도 참 예뻤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정성주 작가였다”는 것. 게다가 안 PD가 1987년 MBC에 입사해 조연출을 맡은 단막극 작가도, 1999년 그저 내용이 재미있어 선택한 드라마 대본을 쓴 이도 알고 보니 정성주였다.
“단막극 조연출 시절에는 대본을 직접 받으러 갔는데, 정성주 작가가 나오더라고요. 그때 첫 대면을 했죠. 이후 연출을 하면서 작가 이름도 안 쓰인 대본 내용에 감탄해 드라마로 만든 게 ‘장미와 콩나물’이었고요. 그 인연으로 친해져 이후 정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나 사담을 자주 나눠요.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12시간은 기본이죠. 그만큼 얘기가 잘 통하고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정 작가와 가장 많은 작품을 같이하게 됐죠.”
“정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노래가 계속 떠오른다고 하기에 저도 좋아하는 노래라 제목으로 정했는데, 드라마 내용과도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노랫말도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해주는 것 같고요. 풍문으로 들은 권력층의 치부를 다루는 드라마니까요.”
방영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안 PD는 정 작가를 “기획형 작가들이 판치는 방송계에 몇 안 남은 문학의 딸”이라고 극찬했다. 또 ‘진정성 있는 글’을 정 작가의 장점으로 꼽으며 여느 극작가처럼 글을 쉽게 쓰지 못하는 그의 집필 스타일에 대해서도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정성주 작가는 글을 쓸 때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해서 애를 태워요. 남들은 쉽게 쓰던데 왜 글을 더디 쓰느냐, 뭘 그렇게 고민하느냐고 물었더니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다 알지 못하면 한데 어우러지지가 않아 부끄러워서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번 작품은 등장인물이 20명이 넘는데 그 사람들을 다 알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의 말 속엔 정 작가에 대한 강한 믿음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밀회’ 때처럼 이번에도 대본이 늦게 나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촬영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한 관계자는 “안 감독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안 감독은 원래 밤샘 촬영을 시키지 않는다. 배우들에게서 최고의 연기를 뽑아내려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믿어서다. 그런데 대본이 자꾸 더디 나와서 본의 아니게 촬영이 늦어질 때가 많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대본이 늦게 나와 중간에서 난처한 처지라고 들었어요.
작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도, 대본이 늦게 나와 연기 연습을 충분히 할 수 없는 배우들의 고충도 모른 척할 수 없는 처지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요. 하지만 작가도 나름대로 완성도를 높이려고 혼신을 다해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 와중에 스트레스를 줄 순 없어요. 그런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요. 대본 때문에 힘들어하고 불평하는 연기자가 있는 건 알지만 별수 있나요. 현장에서 제가 배우들의 고충을 좀 더 깊이 헤아리고 잘 다독여서 함께 가는 수밖에요.
팀워크는 어떤가요.
여전히 좋습니다.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최선을 다 해주는 배우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조연과 단역 대부분이 연극배우 출신이던데, 연극배우를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배우를 캐스팅할 때는 끼나 기술보다 인간적인 면을 중시해요.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친구들에겐 남다른 근성이 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기가 좋아 인생을 건 사람들이죠. 그렇게 작품에 ‘올인’하고 인생의 내공이 있는 친구가 연기도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배우들을 발굴해 기용하고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겹치기 출연도 안 해요. 작품에 대한 몰입도도 높고요. 그러다 단역을 잘하면 조연으로, 또 조연을 잘하면 주연으로 쓰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요. 좋은 배우를 적재적소에 쓰는 건 자랑거리가 아니에요. 감독으로서 당연히 할 도리일 뿐이죠.
이번 작품에 기용한 배우 가운데 ‘신의 한 수’가 있나요.
신의 한 수가 있어선 안 되죠. 어느 한 사람이 아닌, 모든 배우가 큐브처럼 맞아떨어져야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요.
시청자들은 방송인 백지연 씨를 배우로 데뷔시킨 것을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던데요.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요. 다른 배우들과 섞여 있어도 원래 연기를 해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더라고요.
배우의 재능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챘나요.
백지연과는 1987년 MBC 입사 동기예요. 젊은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가끔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곤 했어요. 백지연은 자기가 겪었던 얘기를 하면서 연기를 해요. 자기 얘기는 자기 말투로, 상대방 얘기는 상대방의 말투로요. 그 모습이 하도 재미있어서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진즉에 알았죠.
대중 예술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1994년 MBC 베스트극장 ‘사랑의 인사’로 연출을 시작한 안 PD는 정 작가와 함께한 작품들 외에도 ‘짝’(1994), ‘현정아 사랑해’(2002), ‘흥부네 박터졌네’(2003), ‘하얀 거탑’(2007) 등 여러 대표작을 남겼다. 2006년에는 ‘국경의 남쪽’이라는 영화로 스크린에 도전하기도 했다.
어떤 작품을 지향하나요.
드라마는 대중 예술이니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해요. 허공에 대고 말하는 작품이 돼선 안 되죠. 무엇보다 시의성과 재미, 이야기가 되는 작품이어야 해요. 연출할 때도 이런 점을 고려해 작품을 선택하죠.
작품을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뭔가요.
리얼리티죠. 드라마는 허구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지만 시청자가 진짜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 친정집은 촬영 스태프들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아요. 그렇다고 좀 편하게 찍기 위해 세트장 구조를 바꾼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거예요. 그러면 감독은 편한 촬영과 리얼리티 중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저는 촬영 세트가 리얼리티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찍기 불편하더라도 시청자가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니까요.
작품을 미리 구상하고 계획성 있게 일하는 편인가요.
그렇진 않아요. 엉겁결에 작품을 맡아요. ‘풍문으로 들었소’도 연출 결정 시한이 다 돼서 엉겁결에 하게 됐어요.
20년 넘게 드라마를 만들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없나요.
왜 없겠어요. 드라마를 찍는 와중에도 매너리즘을 느낄 때가 있어요. 대신 오래가진 않아요. 바로 반성하고 심기일전하거든요. 하하하.
2003년 MBC를 나와 프리랜스 연출가의 행보를 시작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나요.
그 무렵 조직 관리를 해야 할 나이가 돼서 나왔어요. 직장 안에서는 연차가 쌓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직 관리를 맡아야 하는데, 드라마를 만들면서 조직까지 잘 관리 할 자신이 없었어요.
방송 일을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요.
언제가 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시한을 정해놓고 이 일을 하고 있진 않아요. 그 시기는 건강에 달렸겠죠. 제가 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으니까요.
평소 흡연과 음주를 즐기나요.(그는 촬영 장소를 다른 세트장으로 옮길 때 잠깐 휴식을 취했는데, 그때마다 담배를 입에 무는 습관이 있었다. 때로는 줄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촬영할 때는 담배를 더 피우게 되더라고요. 하루 두 갑 정도요. 대신 술은 즐기지 않아요.
드라마 촬영을 모두 마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요.
휴식이죠.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요. 원래 쉴 때는 멍때리고 있을 때가 많아요. TV를 보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말 그대로 멍때리고 있는 걸 좋아해요. 하하하.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요.
어릴 땐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상황에 맞고 시대가 요구하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벌써 석 달 넘게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경기도 남양주 세트장에 나온 안 PD는 5월 13일 시간을 내 병원을 찾았다. 깁스를 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새롭게 반 깁스를 했다. 담당 의사는 그에게 “뼈가 아직 붙지 않았으니 한 달 더 두고 보자”고 했다고 한다. 한 달 뒤면 6월 13일. ‘풍문으로 들었소’는 6월 7일 30부로 끝나니 그날은 안 PD가 온전한 두 발로 병원을 걸어 나와 그가 좋아하는 ‘멍때리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글 · 김지영 기자|사진 · 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