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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솎아내기’로 시작한 새정치聯 혁신워크숍

입력 | 2015-06-03 03:00:00

“고개 치켜든 열매 놔두면 안돼”… “머리 쳐든다고 다 잘라야 하나”




2일 경기 양평군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문재인 대표(가운데)와 이종걸 원내대표(왼쪽)가 배나무 열매를 솎아내며 미소 짓고 있다. 양평=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형 사고가 난 건 경고를 계속 받고도 사실상 무시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의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2일 당 워크숍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4·29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친노(친노무현), 비노(비노무현) 진영 간 계파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이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도 패배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날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 양평군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열린 워크숍을 찾은 새정치연합 의원 110여 명은 당의 대표 색인 파란색 점퍼로 갈아입고 인근 농장으로 향했다. 첫 번째 교육 일정인 배나무 열매 솎아 내기 작업을 하며 땀을 흘렸다.

농사 체험 도중 한 의원이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배 솎아 내기는 ‘공천 물갈이’의 암시다. 여기 (솎아 낼 열매가) 많네. 여기는 호남, 여기는 수도권.” 그러자 주변에 있던 의원들 사이에선 “미리 솎아 내야 나머지 열매가 튼실하게 자란다”, “뻣뻣하게 고개 치켜든 열매를 놔두면 안 된다”, “머리 쳐든다고 다 잘라야 하나. 그러면 누가 할 말을 하겠나” 등의 대화가 오갔다. 한 당직자는 “혁신은 인적 쇄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스스로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교차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일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성경 구절을 교훈으로 내걸고 입교생들에게 빡빡한 수련을 시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워크숍 식당에 ‘혁신하기 싫으면 말하지도 말라’라고 적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워크숍 장소로 선택한 건 ‘위기에 놓인 당의 분위기를 재정비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6년 3월 성추행 파문 등으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도덕성을 재무장하자”며 워크숍을 연 곳이기도 하다.

의원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김 혁신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재·보선 참패 원인을 진단하고 내년 총선 승리 전략을 논의했다. 선거에서 패한 이유로 당의 고질인 계파 싸움에 대한 실망감과 피로감을 꼽는 지적이 많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정치철학 확립 △아래서부터 위로의 리더십 △당원과 국민 중심의 당 △야당다운 투쟁성 회복 등 4대 쇄신책을 제시했다. 그는 “혁신위는 인사와 공천을 중심으로 한 개혁 과제를 안고 있다”며 “혁신위 활동이 끝난 다음은 여기 계신 여러분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의원들에게 “‘계급장을 모두 뗀다’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내일 이곳을 나갈 때는 하나가 돼 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노 진영의 수장이자 지난해 공동대표를 지낸 김한길 안철수 의원은 이날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 의원 측은 “몸이 좋지 않다”고, 안 의원 측은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라디오 생방송 출연 일정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문재인 사퇴론’을 강력 주장했던 박주선 의원과 “문 대표가 반칙으로 대표가 됐다”고 주장해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된 조경태 의원도 불참했다. 막말 파문으로 최고위원 자격정지 1년 징계를 받은 뒤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인 정청래 의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한 당직자는 “‘친노 패권주의’와 ‘문재인 책임론’을 두고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피한 셈”이라며 “당의 단결을 도모하려던 워크숍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양평=배혜림 beh@donga.com·한상준/황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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