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광복 70주년 기념 특집]한국가곡의 역사①
《 올해는 대한민국 광복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가곡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 하는데요. 한국가곡은 서양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엔 우리나라 특유의 한과 얼이 서려 있으며 애틋하고도 서정적인 한국적 멜로디와 노랫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다만 대중가요에 밀려 예전만큼 뜨거운 사랑과 인기를 얻지 못하는 점이 아쉬운데요.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시도와 더불어 현대적인 감각을 잘 융합한 신곡들을 꾸준히 발표한다면 분명 대중가요처럼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풍’ 확산에 많은 기여를 하리라 자신합니다. 게다가 한국가곡은 이탈리아가곡이나 독일가곡, 프랑스가곡 못지않은 매력이 있기에 이미 꽤 오래전부터 ‘스리테너’로 유명한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나 호세 카레라스,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바버라 보니 등과 같은 세계적 성악가들이 자신의 음반에 수록했었는데요. 이런 사실들만 봐도 세계 음악시장에서 한국가곡이 매우 큰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다들 느끼시겠지요. 조만간 세계인들이 ‘그리운 금강산’이나 ‘목련화’를 서로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볼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서울 종로구 홍파동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 동아일보DB
임형주 팝페라테너
○ 홍난파 ‘봉선화’와 박태준 ‘동무생각’
우리나라 가곡은 대한제국 말기인 19세기 말 기독교의 보급으로 수입된 찬송가와 당시에 일기 시작했던 ‘창가(唱歌)’에 그 시발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창가는 당시 체계적으로 악보화되기보다는 민속음악처럼 구전되는 경우가 많았고 작사자의 경우 전문적인 시인이 아닌 일반 지식인, 민중 지도자가 많았습니다. 또 대체로 창가의 선율은 기독교 예배음악인 찬송가의 선율을 차용하여 만든 경우가 많았으며 이 찬송가 선율들은 창가뿐 아니라 애국가 독립군가 항일투쟁가 등으로 변모되기도 하였지요.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발표되었던 ‘애국가’ ‘권학가’ ‘독립가’ 등 작품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민감하게 반영하며 우리 한민족에게 널리 애창되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 창가는 애국가 유행가 예술가곡 동요 등 모든 기능을 동시에 수반하는 미분류된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최초의 한국가곡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는 박태준(1900∼1986)의 ‘동무생각’과 홍난파(본명 홍영후·1898∼1941)의 ‘봉선화(봉숭아)’를 꼽을 수 있는데요. 먼저 ‘동무생각’은 1922년에 작곡된 곡으로 최초의 한국가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곡은 단순한 듯하지만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노랫말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성악가들이 애창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홍난파가 1925∼1926년 사이에 발표한 ‘봉선화’는 1920년 자신이 바이올린곡으로 먼저 작곡한 ‘애수’라는 곡에 김형준이 지은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애틋한 노랫말을 붙여 완성한 곡입니다. 당시 일본의 억압에 짓밟힌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담은 이 곡은 발표 직후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며 한국가곡의 효시이자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봉선화’는 창가와 같은 4·4조의 노랫말이지만 풍부한 음악성과 예술성을 두루 지닌 작품으로 종래의 창가에서 승화된 새로운 개념의 곡이었지요.
‘동무생각’ 발표 이후 박태준은 ‘님과 함께’ ‘미풍’ ‘소낙비’ 등의 대표작을 연이어 발표하였습니다. ‘고향생각’의 성공 이후 1929년 미국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작곡가 현제명(1902∼1960)은 ‘황혼의 해변’ ‘새벽종소리’ ‘니나’ ‘오라’ ‘그 집 앞’ ‘산들바람’ ‘나물캐는 처녀’ ‘가을’ ‘적막한 가을’ ‘희망의 나라로’ 등 무려 20여 곡을 발표하는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며 한국가곡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한국가곡의 역사를 논할 때 현제명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로 평가받게 된 것이지요.
홍난파 또한 ‘금강에 살어리랏다’ ‘봄처녀’ ‘사랑’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장안사’ 등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하며 ‘한국의 슈베르트’라는 애칭과 함께 한국가곡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기여를 하며 ‘한국가곡=홍난파’라는 음악적 공식을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의 작곡가이자 성악가였던 안기영(1900∼1980)의 경우에는 ‘그리운 강남’ ‘조선의 꽃’ ‘살구꽃’ ‘해당화’ 등의 곡들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25년에 발표한 ‘내 고향을 이별하고’는 한국 대중가요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임형주 팝페라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