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귀농·귀촌인들이 시골농장을 견학하면서 농장주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솔직히 죽느니 사느니 해도 지금의 농촌은 역대 정권이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 유지되어온 것 아닌가요. 그 돈은 도시민이 낸 세금이지요.”
“툭 하면 농민들이 농촌을 지켜왔다고 말하는데, 사실 지켜온 게 아니라 못 떠난 거겠지요. 농촌을 지켜온 건 농산물 구입과 농촌체험·관광에 돈을 지불한 도시인들입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원해 조성 중인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 사업장 몇 곳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곳은 귀농·귀촌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직접 1년간 거주하면서 영농체험 및 교육을 받고 땅 마련, 작물 선택 등 시골 정착 준비를 하도록 돕기 위한 시설이다. 그런데 해당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입주(예정)자들의 자세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월세도 주변 시세보다 크게 저렴하고 개별 텃밭과 맞춤형 교육 등 상당한 특혜를 주는 셈인데도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무리한 요구가 너무 많습니다.”
“상당수는 공직, 대기업 등에 몸담았던 분들이라 그런지 농촌과 농촌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대합니다. 원주민의 텃세 못지않게 향후 갈등 유발 요인이 될 것 같아요.”
“심한 경우에는 우리(도시인)가 농촌을 먹여 살렸으니 각종 귀농·귀촌 지원은 당연한 것 아니냐. 빨리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음가짐이 이렇다 보니 먼저 귀농·귀촌한 이들끼리도 서로 이기기 위해 경쟁하고 이해관계에 얽혀 편을 나눠 반목하는 일이 잦다. 귀농·귀촌 열풍이 불면서 각종 매체에 소개된 수많은 성공 스토리와 휴먼 스토리의 이면에는 우리(귀농·귀촌인)의 이런 일그러진 자화상이 은밀하게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물론 필자 역시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도시민이 전원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공인가, 아니면 행복인가. 생태주의적인 삶인가, 아니면 그저 유유자적하는 삶인가. 상생하는 삶인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인가. 농민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전원인이 되고 싶은가.
시골 생활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더 나아가 이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이에 대해 수없이 자문자답해 보았을 것이다.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다. 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이다. 그런데 농촌은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환상적이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인 노령화율이 39.1%, 농가경영주 평균 연령이 66.5세에 이르는 늙고 침체된 곳이요, 연 농업소득 1000만 원 미만 농가가 전체의 64%에 달하고 도시 근로자 가구의 소득 대비 농가소득비율은 61.5%에 불과할 정도로 먹고살기 힘든 곳이다.
귀농·귀촌은 이처럼 위기에 처한 농촌·농업을 구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의 각종 지원 혜택만을 챙겨서 들어오겠다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역에 무임승차하겠다는 자세는 개인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