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드니로의 졸업 축사로 다시금 주목받은 미국 뉴욕 맨해튼 시내의 매디슨스퀘어가든(그림엽서).
지난달 22일 미국 뉴욕 시내의 매디슨스퀘어가든. ‘대부2’로 오스카상을 받은 71세 노장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보라색 학위수여 가운 차림으로 단상에 섰다. 졸업 축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 앞에는 뉴욕주립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티시예술대 졸업생과 학부모 등 2000여 명이 있었다.
축사는 인상적이었다. ABC방송 앵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소의 분명하고 재밌고 재치만점의 언어구사(Colorful Language)’였다. 백미는 청중을 일순 놀라게 하고 환호케 만든 파격의 첫마디였다. ‘여러분, 드디어 해냈군요,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부터 엿 됐습니다’(You made it. And you‘re f***ed)라는.
나는 15분짜리 이 축사 영상을 몇 번이고 보았다. 연기가 아닌 그의 실제 말과 행동을 보고 듣는 게 처음이어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건 영화를 통해 형성된 그의 이미지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인품까지도. 물론 그게 연기였다고 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가 어린 후배를 향해 쏟아낸 그 애정 어린 축사는 주어진 ‘대사’가 아니었으니 그의 행동 역시 ‘연기’로 의심할 여지는 절대로 없다.
그런데 영상을 보는 내내 내 마음과 뇌리에선 내 아들뻘의 우리나라 대졸 취업준비생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이런저런 회사로부터 수십, 수백 번의 거절을 당하고 이제 더이상 ‘다음’이란 재기의 외침마저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닐지 걱정되어서다. 거절은 일상사니 다음을 기약하라는 축사, 용기를 잃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격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가. 게다가 최선을 다했다면 자기 잘못이 아니라지만 이력서를 수십, 수백 장이나 쓰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 앞에선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축사를 마치며 자기도 이제 이력서를 들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을 찾을 준비를 하겠다는 로버트 드니로가 바로 우리 모두 아닌가. 그래서 나도 취준생에게 ‘다음’을 말해 주고 싶다.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라는 영화 중에 감독(알 파치노)이 마지막 게임 시작 3분을 앞두고 미식축구 팀 선수에게 들려준 강렬하면서도 조용한 외침을 빌려서 말이다.
“인생은 1인치 게임(game of inches)이야. 그런데 게임이란 게 말이야, 오차범위가 너무 작아 조금만 빠르거나 늦어도 이길 수가 없어. 주변을 봐. 모두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치로 이뤄지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 인치를 위해 싸우지. 그 인치가 모여 판가름 나니까. 어떤 싸움이든 같아. 죽으려고 달려드는 놈만이 그 인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그러니 내가 살아있다는 건 바로 그 인치를 위해 싸우고 죽을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이야. 그게 인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