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사회부 차장
평소 자주 이용하던 콜택시에 전화를 걸었다. “확인한 뒤 연락드리겠습니다.” 콜센터 여직원이 전화를 끊었다. 15분쯤 지났을까, ‘죄송합니다, 배차 가능한 차량이 없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술 한 잔 덜 마시고 일어나서 버스 타고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진짜 악몽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다행히 도로 위에 택시가 많았다. 하지만 택시를 타려는 사람도 많았다. 경쟁이 치열했다. 사람들은 차로까지 내려가 택시를 향해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예약’ 표시등을 켠 택시들은 마치 메뚜기처럼 줄지어 선 사람들을 옮겨 다니며 손님을 골랐다. 내 앞에도 한 대가 섰다. 조수석 창문이 살짝 열렸다. 새끼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힘껏 목적지를 외쳤지만 택시기사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내달렸다.
이상은 약 1년 전 필자가 겪었던 ‘택시승차전쟁기’다. 이날의 ‘패전’ 이후 필자는 가급적 심야시간(특히 목요일 밤)에 택시 이용을 피한다. 아무리 유쾌한 술자리가 있어도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급적 일찍 자리를 뜬다. 주변에는 이와 비슷한 전쟁을 치러본 사람이 많다. 물론 그들 역시 대부분 패전을 면하지 못한다.
서울지역 택시의 승차 거부를 해결하기 위해 조만간 ‘합승’(서울시는 ‘동승’이라고 표현한다)이 허용된다고 한다. 강남역 일대의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서울시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런데 조건이 까다롭다. 같이 타려는 사람이 반드시 ‘오케이’해야 하고 남녀가 각각 합승하려면 인원도 자리도 제한된다. 목적지가 제각각인데 도대체 요금을 얼마씩 낼지도 의문이다. 비싼 돈 내고 타면서 이렇게 신경 쓸 게 많고 택시기사와 옆자리 승객 눈치까지 봐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일찍 술자리에서 일어나 버스를 타는 것이 몸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아 보인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