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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개미가 공룡 된 메르스 사태

입력 | 2015-06-03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개미 한 마리라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자세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말했는데 지금의 사태는 공룡이 휘젓고 지나가는 형국이다. 어제까지 메르스 감염자 2명이 사망했고 25명이 확진 환자로 밝혀졌다. ‘3차 감염은 없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을 비웃기라도 하듯 3차 감염자가 세계 최초로 발생했다. 감염 가능성을 숨기고 중국에 입국하고 격리를 거부하는 한국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나라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있다.

병원 감염에 무방비 상태

정부는 메르스가 지역사회로 전파되지 않았다고 강조하지만 병원 감염이야말로 심각한 일이다. 1차 감염자가 지난달 15∼17일 입원했던 경기도 한 병원에서 19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은 2003년 홍콩 메트로폴호텔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17명에게 전파된 것에 비견되는 대형 감염사고다. 나머지 환자들도 첫 환자를 진료했던 동네병원 의사이거나 이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에 있던 환자나 그 가족이었으니 모두 병원에서 병을 얻은 공통점이 있다. 메르스는 공기로 전염되지 않고 환자와 2m 이내에서 한 시간가량 접촉한 사람만 침방울을 통해 감염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환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 다른 병실 환자까지 전염된 걸까. 첫 번째는 환자가 진단을 받느라 병원 곳곳을 이동했을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첫 환자를 진료한 의사나 간호사가 손이나 청진기를 통해 환자를 감염시켰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해당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방호복도 없이 맨손으로 환자 분비물을 치웠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정확한 감염경로는 역학조사가 끝나야 나오겠지만 드러난 정황만으로 볼 때는 의료진이 감염의 매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병원은 병원균의 집합소이다. 감염이 일어난다면 한꺼번에 대규모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 병원이 판데믹의 종착점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병원 1개 층에서 이렇게 많은 환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평소 병원의 감염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메르스가 아닌 다른 질환도 얼마든지 의료진이 옮길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병원들이 근사한 건물을 짓고 최신 의료장비를 구비하는 데 신경을 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감염 관리엔 얼마나 무방비였는가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 의료체계와 간병문화를 보면 그동안 큰 병원 감염이 없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기본적으로 여러 명의 환자가 함께 쓰는 다인실이 너무 많다. 간호사 대신에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것도 기이하다. 환자 한 명당 한 명의 간병인이 붙어 생활하니 6인실이라면 12명이 병실에 상주하는 셈이고 가족이 수시로 병문안을 오다 보니 하루 20∼30명이 병실에 들락거리게 된다. 환자 간병인 가족이 뒤섞여 화장실을 함께 쓰고 병실에서 피자를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가족이 함부로 병실에 드나들 수 없는 미국, 유럽 병원들 눈으로 보면 희한한 풍경이리라.

간병인 가족 북적대는 병실문화

이런 의료체계와 병실문화를 가진 나라가 의사 능력과 첨단 장비 등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은들 의료 선진국이 될 리 만무하다. 병원 감염도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가 의료관광의 허브가 되겠다고 하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르스는 한국 의료체계의 후진적 민낯을 드러냈다. 의료관광도 좋지만 민간 및 공공의료의 기본 틀부터 돌아볼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