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반드시 타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시행령 수정권은 여당이 합의해주지 않으면 강제력도 없는데, 안 된다고만 하면 공무원연금법 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지난달 28일 저녁 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도중 전화를 걸어온 이 실장과 입씨름을 벌였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의 조건으로 들이민 국회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본질 벗어난 유승민 사퇴론
박 대통령은 사사건건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동안 잠을 못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지도부까지 가세해 행정부를 포위하는 듯한 상황에 박 대통령의 고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만하다.
개정 국회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의지는 분명히 천명됐다. 유 원내대표는 “국회의 시행령 수정 요구는 강제력 없다”며 삼권분립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야가 이 조항을 통과시킨 목적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야당의 요구대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강제력 없는 조항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회법을 둘러싸고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마침 잘됐다는 식으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여권 내 소통구조의 고장을 드러낸다. 차제에 박근혜 정부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유 원내대표를 찍어내려 한다는 그럴싸한 해석까지 나돌고 있다.
위헌성 해소 위해 손잡아야
박 대통령이 관저든 집무실이든 유 원내대표를 초청해 협조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훗날 어느 대통령이 청와대에 오더라도 국회법 개정안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임을 간곡하게 설득하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의 호소를 듣고도 10년 전 대표비서실장을 지낸 유 원내대표가 자기주장만 바득바득 내세우진 못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의료보험 개혁안과 정부 부채한도 증액 등을 둘러싸고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에 봉착했을 때 상·하원의 여야 의원들을 번갈아 백악관에 초청해 입이 마르도록 설득했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새정치연합을 설득해 다음과 같은 합의문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야가 이렇게 선언하면 개정 조항의 위헌 논란도 정치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야당이 이를 거부하고 강제력을 고집한다면 그 자체가 삼권분립 위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 때 부결시켜 헌법을 지키는 길을 가면 된다. 이것이 박 대통령도, 유 원내대표도 함께 사는 길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