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대한법학교수회 사시존치대책위원장
사과만 먹던 집에서 사과는 몸에 좋지 않다고 오렌지를 먹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오렌지도’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오렌지만’ 먹어야 한다고 못을 박아놓았다. 사법시험이 사과라면 로스쿨은 오렌지이다.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과만’ 먹자는 것이 아니라 ‘사과도’ 먹고, 오렌지도 먹자고 한다는 사실이다. 사과가 있으면 오렌지가 위험하니 사과는 없애버려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현행 로스쿨 체제는 입학전형의 객관적 기준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 배려를 내세워도 ‘진짜 약자들’인지, 영악한 강자들의 편법 출세 도구인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사과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공정성에서만큼은 탁월하기 때문이다. 공정의 초점은 변호사 배출이 아닌 공직자 배출에 맞추어져야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내지 못하던 대학에서도 변호사가 나올 수 있다는 오렌지파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 냉정하게 말해 법조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불투명한 입학전형을 통해 변호사가 되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밖에 안 된다. 판사와 검사라는 공직에 임명될 수 있는 기회에 얼마나 열려 있는가가 공정성의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2012년부터 올해까지 임용된 검사들 중 로스쿨을 나온 검사의 73.2%가 소위 ‘SKY’대 출신인 반면에 사법시험 출신 검사들 중 ‘SKY’ 비율은 65.1%였다. 사법시험 아래에서는 전국의 26개 대학에서 한 명 이상의 검사를 배출했지만 로스쿨 체제 아래서 검사를 한 명 이상 배출한 대학은 20개였다. 사법시험 아래서 시험과 연수원 성적으로 학벌의 불리함을 만회할 수 있었던 젊은이들은 이제 대학수학능력시험 한 방이 가져다 준 학부 학벌의 족쇄에 묶이고 만 것이다. 비교우위 면에서 오렌지는 사과에 밀릴 뿐 아니라 절대적 기준에서도 적잖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2015년 서울대 로스쿨 신입생 중 23∼25세가 60%, 31세 이하가 94.7%로 나타났다. 필자가 로스쿨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특성화 교육 성과에 대하여 60점 미만을 준 비율이 48%에 달했다.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가진 자원들을 뽑아 경쟁력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로스쿨 졸업생들의 진로에 집안 연줄과 배경이 결정적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사과에 질린 국민을 위해 들여왔다는 오렌지는 원조 미국을 거쳐 일본을 통해 재수입되면서 상당히 변질되었다. 당초 기대했던 맛도, 성분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기준치 이상의 농약까지 검출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사과를 못 먹게 할 이유는 없다. 희망, 공정, 객관, 투명, 이 모든 것은 건강한 사회, 활력 있는 사회의 징표이다. 국민 식탁에 싱싱한 사과와 오렌지를 둘 다 올려놓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국회와 정부의 책임이다. 사법시험이 존치되느냐 마느냐를 통해 우리 세대에 어느 세력이 열린사회의 적인지, 아닌지 판가름 날 것이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대한법학교수회 사시존치대책위원장
신영호 고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로스쿨이 출범한 지 겨우 6년이 지났다. 교육부, 법무부, 법원행정처,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등 사회 각계각층의 10년이 넘는 논의와 지혜를 모으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로스쿨’ 제도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안착을 돕기는커녕 사법시험의 존치를 주장하며 로스쿨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는 로스쿨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이끌며 국가와 국민의 이익은 도외시한 채 일부 법조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의 소산이다.
사법시험 존치의 주된 논리 중 하나는 로스쿨은 등록금이 비싸 경제적,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비롯해 일반 서민들은 진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법시험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제도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을 시작으로 2014년 사법시험까지 총 69만6331명이 출원했으며, 그중 약 2.94%인 2만450명이 합격했다. 합격하지 못한 다수(67만5881명)는 시험 준비한 시간을 모두 날리고 말았고 일부는 고시촌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시낭인으로 전락했다. 고작 응시자의 3%만이 합격하는 시험에 ‘대박’을 꿈꾸며 도전하는 일은 경제적 형편이 버텨줄 수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은 장기간의 수험 준비를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로스쿨은 위와 같은 사법시험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설립된 것이다. 사법시험 제도가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이었다면 로스쿨 제도는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기본 취지를 바탕에 두고 있다. 특히 지방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권역별로 로스쿨이 설치돼 있으며 그 지역의 대학에서도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았고 이에 따라 학부 교육의 정상화와 기회 균등이 이루어졌다.
서민들이 로스쿨에 들어오기 힘들다고 하지만 현재 전국 25개 로스쿨에서는 특별전형제도를 통해 매년 입학정원의 5% 이상(지금까지 890명)의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취약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입학하여 전액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을 받고 있다.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사람 중 이미 315명(1∼4기)이 변호사가 되어 사회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예로 서울대 로스쿨에서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서울대 로스쿨 신입생 중 가구소득이 2000만 원 미만인 학생이 28명으로, 전체(152명)의 18%에 이른다. 결코 부유한 자제들만 입학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로스쿨의 등록금이 비싸다고 하지만, 학교별로 살펴봤을 때 교육투자(교원, 시설, 장학금 혜택 등)를 감안한다면 국·공립대의 연 실등록금은 551만4000∼914만4000원, 사립대의 연 실등록금은 401만7000∼1474만4000원(2013년도 기준)으로 일부 로스쿨은 학부 등록금보다 저렴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법조인이 되기에 진입장벽이 낮은 쪽은 누가 봐도 사법시험보다는 ‘로스쿨’이다. 가난한 사람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아니더라도 법조인의 꿈을 키워 갈 수 있는 곳이 로스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과 ‘사다리’를 운운하면서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것은 신뢰와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다. 국가의 대의보다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외침에 불과하다. 모순된 정책 변경에 국가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은 로스쿨을 통해 우수 법조인을 양성해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이며 기존 법조 단체들 역시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신영호 고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오피니언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