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낙타의 사과에 누리꾼들의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한 지 채 하루가 안 돼 3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논란의 중심에 선 낙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야기입니다. 메르스의 감염 매개체로 알려진 낙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듯 익명의 페이지 운영자는 거듭 “미안해”, “내 잘못인 거 알아”라며 사과를 되풀이했습니다. 낙타의 눈에 눈물이 맺힌 사진도 게재됐습니다. 누리꾼들은 페이지 운영자의 뻔뻔함에 ‘ㅋㅋㅋ’를 연달아 달면서도 마냥 웃지 못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눈앞의 현실이 떠올라서일까요.
하루 새 수백 명씩 격리자가 늘어나는 거짓말 같은 현실. 메르스 사태, SNS의 중심에는 낙타가 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 논란의 시초가 된 것은 보건복지부 발표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낙타와의 밀접한 접촉을 피하고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 또는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섭취를 피하라는 정부의 방침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누리꾼들에게는 한심할 뿐이었습니다. 낙타유, 낙타고기 섭취는커녕 낙타를 볼 일도 흔하지 않은 이곳에서 마치 낙타와의 접촉이 만병의 근원인 양 다뤄진 것은 대중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요즘 길 너무 막혀서 낙타 1종 따려고 했는데” “휴∼ 정부의 조치가 아니었다면 낙타유를 마실 뻔했지 뭐야” 등 복지부의 발표 내용을 비꼬는 댓글은 풍자의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풍자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패러디물도 하나둘 등장했습니다. 대표 사례는 2013년 바이러스 감염을 다룬 영화 ‘감기’의 패러디 영화 ‘낙타’. 원작 포스터 속 죽음의 바이러스라는 문구를 ‘죽음의 중동생물’로 바꾸는 등 작업자의 세심한 배려에 누리꾼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냈습니다.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님아, 그 낙타를 타지 마오’가 됐습니다. 이 밖에도 영화 ‘매드맥스’는 ‘매드낙타’가, ‘인터스텔라’는 ‘인터카멜라’가 됐습니다.
해시태그(단어 앞에 ‘#’을 붙여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를 이용한 조롱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재 트위터에서는 ‘#작품 제목에 낙타를 넣어보자’ ‘#영화 제목에 낙타를 넣어보자’ 등의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영화, 작품 제목 등에 낙타를 접목해 사태의 심각성(?)을 다뤄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트위터에는 ‘낙타와 함께 춤을’(원제 ‘늑대와 함께 춤을’), ‘낙타 치는 대통령’(원제 ‘피아노 치는 대통령’) 등 무시무시한 영화 제목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 속 위인마저 소환됐습니다. 한 누리꾼은 고려 태조 왕건이 거란에서 친선의 의미로 보내온 낙타 50필을 다리 밑에서 굶어죽게 한 사실을 언급하며 “죽은 낙타들의 영혼이 저주(메르스)를 내렸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웃프다(웃기면서도 슬프다)’는 반응이 나올 법합니다.
지금의 모든 사태가 보건당국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3차 감염은 거의 없다”는 등 정부의 호언장담이 하나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무기력한 대처가 떠오르는 것은 비단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겁니다. 이 와중에 메르스 관련 허위사실 유포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소를 되찾기는커녕 외양간은 제대로 고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합니다.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