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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활]헤지펀드 엘리엇의 ‘삼성 공격’

입력 | 2015-06-06 03:00:00


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은 2003년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대주주의 주식 지분이 낮았던 SK는 소버린의 경영권 탈취 시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국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좌파 단체와 “주가만 오르면 좋다”라는 맹목적 월가(街) 논리에 물든 일부 지식인은 소버린을 편들었다. 소버린은 SK의 경영권을 빼앗는 데는 실패했지만 1조 원 가까운 차익을 올리고 2005년 한국을 떠났다.

▷일본 경제평론가 하마다 가즈유키는 1999년 투기자본의 위험성을 파헤친 ‘헤지펀드’란 책의 부제(副題)를 ‘세기말의 요괴’라고 붙였다. 그는 “헤지펀드가 때로 신흥국 경제 시스템의 모순을 교정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환자가 빈사의 타격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10여 년 전 SK는 소버린의 공격에 맞서느라 투자 여력이 줄었다. 2006년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의 공격을 받은 KT&G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의 합병 계획을 발표한 삼성물산 주식을 매집해 지분을 7.1%로 높였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조건은 공정하지 않아 주주 이익에 반(反)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이 합병 무산 카드로 삼성을 압박한 뒤 주가를 끌어올려 소버린처럼 차익을 챙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삼성그룹의 삼성물산 지분은 약 14%로 엘리엇의 2배 정도지만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칼텍스와 GS그룹의 합작,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에쓰오일 경영처럼 우량 외국자본이 한국에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해외 헤지펀드가 경영권 침탈이나 단기 시세차익을 노려 주요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소버린과 아이칸이 ‘먹튀’를 넘어 SK와 KT&G의 경영권까지 빼앗았다면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헤지펀드가 공격한 기업의 주가가 ‘테마주 효과’로 반짝 상승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상투’를 잡은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