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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시든 내수에 ‘메르스 쇼크’… 3%대 성장마저 불안

입력 | 2015-06-06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바이러스의 습격
바이러스 확산 초동대처 잘했던… 사스-신종플루 때도 성장률 뚝
공연-외식 등 국내소비 줄어 위험… 전문가들 “추경-금리인하 필요”




멈춰선 관광버스 메르스 확산으로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탄천주차장에 주차된 빈 관광버스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여파로 한국 경제가 코너로 몰리고 있다. 수출이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조금씩 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소비심리가 다시 꽁꽁 얼어붙어 경제가 다시 어두운 터널로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졌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제자리걸음을 해도 내수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데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메르스 여파로 발생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올해 3%대 성장률을 달성하기가 사실상 힘들어졌다는 비관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안심리가 실물경제 부진으로 확산

2000년대 들어 경제 외적 변수인 바이러스가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세계적으로 3차례 있었다. 2003년 중국에서 시작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멕시코발 신종인플루엔자, 2014년 서아프리카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볼라 등이 ‘소비심리 위축→실제 소비 감소→ 내수 산업 위축→성장률 하락’의 과정을 거치며 해당 지역 및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

이 가운데 에볼라는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줬지만 아시아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반면 사스와 신종플루는 아시아 주요국 경제에 실질적인 위협 요인이었다. 사스 발병으로 중국의 2003년 2분기(4∼6월) 성장률은 직전 분기보다 3%포인트 낮은 7.9%로 떨어졌다. 그해 하반기에 성장세가 회복돼 연간 성장률은 10%로 올라섰지만 바이러스가 단기간에 경제를 급랭시킬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은 신용카드 사태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사스 공포가 소비를 억눌러 2003년 성장률이 전년의 절반도 안 되는 2.9%에 머물렀다. 2009년에 유행한 신종플루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던 한국 경제에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2009년 한국의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이번 메르스는 아직까지 경제 지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감염사태가 더 진행되면 사스나 신종플루 못지않은 충격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사스, 신종플루는 한국 경기가 최악의 상태를 지나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던 시기에 발병했지만 최근 국내 경기는 바닥권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과거에는 한국이 바이러스 확산을 초기에 잘 통제했지만 이번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환자가 많은 주요 메르스 발병국이 됐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각종 모임, 공연, 외식 분야 등에서 소비가 실제 줄어들고 있다”며 “외국인의 한국 관광이 줄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외국에서 한국 제품을 외면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 불안심리 진화 나서야”

메르스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정부와 한국은행은 아직 정책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추가경정예산 편성, 기준금리 인하 등 긴급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우선 한은이 이달 11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지에 경제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다음 주까지 이어진다면 이미 사상 최저 수준(연 1.75%)인 금리가 한 단계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정책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시일이 걸리겠지만 일단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조치가 당장 필요하다”며 “지금 흐름이 며칠만 더 이어진다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시장의 목소리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추경 편성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전염병 확산에 따른 경기 둔화가 추경 편성의 법적 요건인 ‘경기침체, 대량실업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추경 방침이 정해지더라도 그 규모는 세수(稅收) 결손 등을 고려해 10조∼20조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추경 시점은 가급적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표로 확인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메르스 문제에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커질 것”이라며 “정부가 구체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카드로 불안 심리를 진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홍수용 / 유재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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