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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부의 정보 독점이 삼성병원發 ‘메르스 2차 확산’ 불렀다

입력 | 2015-06-08 00:00:00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주말 사이에 23명이 늘어 모두 64명이 됐다. 주말을 고비로 경기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환자 수는 주는 반면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가 17명으로 늘어났다. 서울 강남에 자리한 국내 굴지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의 2차 ‘숙주(宿主)병원’으로 드러나 충격이 크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만성 질환자와 방문객이 많아 1차 숙주병원 평택성모병원보다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병원 측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평택에서 온 14번 환자와 접촉한 인원을 893명으로 파악하고 격리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 환자는 5월 27일 응급실에 들어온 뒤 30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확진 통보를 받기까지 폐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중동에 다녀온 적이 없는 이 환자가 1번 환자와 평택성모병원의 같은 병동에서 지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27∼29일 응급실에 머무르게 했던 것이 실책이었다. 정부가 의료기관에 메르스 감염 병원 명단을 알렸거나, 질병관리본부가 전담한 확진 판정을 지방자치단체와 분담해 확진 판정 시간을 최대한 단축했다면 이처럼 대규모 격리대상자가 나오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삼성병원발(發) 메르스 2차 확산은 정부의 정보 독점이 빚은 참사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메르스 감염이 병원에 국한돼 있고 지역 감염 사례가 없으며 바이러스 변이도 없다는 점이다. 공기 감염이 있었다면 환자 수가 폭증했을 것이므로 앞으로 병원만 잘 통제하면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환자가 발생한 병원과 들렀던 병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메르스 확산 방지와 불안감 해소에 필수라고 본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이 강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어제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이 확진 환자가 발생한 6개 병원과 환자가 경유한 18개 병원의 이름을 뒤늦게 발표했지만 명단에 오류가 나와 정부 신뢰가 더 떨어졌다. 아무리 총리 대행 체제라지만 메르스 사태를 총괄 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초기 대응에 실패했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총지휘를 계속 맡겨둬도 되는지 불안하다.

정부가 무능을 드러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부와 엇박자를 낸 것도 국민의 불안감을 키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6일 밤 메르스 확진 환자의 거주지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명을 공개해 인권침해 논란을 낳았다. 막연한 소문으로 인한 공포심을 잠재우고 엉뚱한 피해자를 막으려는 목적이라지만 증세가 없는 감염자 자녀의 신상까지 알려지도록 한 것이 옳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뒤늦게 문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권선택 대전시장이 중앙과 지자체 간 실무협의회를 구성하고, 지자체가 메르스 환자 확진 판정 권한도 가지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문 장관이 그간 메르스 방역정책의 핵심이던 밀접 접촉자에 대한 추적관리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만큼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공조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 여야 대표가 정쟁을 자제하고 메르스 관련 초당적 협력을 다짐한 것도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지금은 메르스 대응에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비상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