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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선택하지 않을 자유

입력 | 2015-06-08 03:00:00


하임숙 경제부 차장

“아직도 011 쓰세요?”

중국 지사에서 파견근무하다 6년 만에 귀국한 취재원이 전화를 걸어와 묻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011 사용자다. 지난해 말로 011 번호가 사라지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지만 천만의 말씀, 2G폰을 쓰는 사람이 여전히 전국에 563만 명이다. 당연히 전화기는 구형 폴더폰이다.

스마트폰으로 결제, 자산관리 등을 하는 ‘핀테크(금융기술) 혁신시대’에 2G폰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으레 스마트폰을 쓰려니 짐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다니는 병원에 전화번호를 남겨도 내게 연락이 안 오는 일이 잦다. ‘011’이라고 강조해 불러줘도 010으로 기록해 두기 때문이다. 나와 나머지 8자리 번호가 같은 010 사용자가 ‘하 기자’를 찾는 전화를 하도 많이 받아 “그분은 011 쓴다”라고 안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폴더폰을 망가뜨리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시중에 스마트폰은 공짜폰까지 나와 있지만 보조금 혜택을 못 받는 폴더폰은 10만∼30만 원의 생돈을 주고 새로 사야 한다. 저렴한 알뜰폰도 있지만 기능이 현격히 떨어진다.

그래도 당분간 2G폰을 바꿀 생각이 없다. 통신사로부터 보상금을 받기 위해 ‘알 박기’한 것 아니냐고? 그건 아니다. 일할 때 늘 데스크톱PC 앞에 앉아 있고, 이동할 때는 운전하며, 집에서는 노트북을 켜는 환경에 살면서 ‘인터넷에서 자유로울 시간’이 필요해서다. 수시로 메시지가 날아오는 카톡도 사양하고 싶다. 요즘처럼 메르스 괴담이 실시간으로 퍼질 때 괴담으로부터 자유로워 정신적 여유가 생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 때문이다. 첫째가 1학년일 때만 해도 반에서 절반 정도만 스마트폰을 썼지만 6학년인 지금은 전교에서 스마트폰을 안 쓰는 6학년생이 내 아이를 포함해 2, 3명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사달라는 아이에게 “엄마도 아직 2G폰을 쓰잖아”라고 말하기 위해 2G폰이 꼭 필요하다.

스마트폰이 청소년에게 얼마나 해악을 미치는지는 부모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아이 스마트폰을 빼앗아 깨버렸다’라는 무용담이 거의 집집마다 있고, 2G폰은 ‘고3폰’으로 통용되는 걸 보면 말이다. 바로 옆에 앉아서도 카톡으로 대화하는 요즘 청소년들에겐 공부할 시간, 사색할 시간이 부족하다. 거친 언어도 쉽게 배운다. 언젠가 엿본 아이 학급의 ‘반톡’은 대화 내용 절반이 욕이었다. 아이 보는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에게 스마트폰은 재앙이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법으로 금지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엄마들도 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DNA’는 분명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정부가 와이파이존을 계속 늘리는 데에는 국민적 요구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빨리’보단 ‘천천히’를, ‘연결’보단 ‘고립’을 선택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무엇보다 원치 않는 사람에겐 첨단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필요하다.

하임숙 경제부 차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