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기자는 평소 “의사 출신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돼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의학지식은 일반 공무원보다 낫겠지만 장관의 업은 국민과의 소통능력, 추진력과 조정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만 좇으며 사는 의사를 적지 않게 접하면서 생긴 편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메르스 민관합동대책반에 참여한 한 보건 전문가의 말을 듣고서는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왜 이렇게 정부가 우왕좌왕하지? 정부 격리 지침은 왜 이렇게 자주 바뀌지?’ 취재 과정에서의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도 같았다.
전문 역학조사관의 부재도 문제였다. 보건당국은 질병관리본부와 각 지자체 소속 공중보건의 30명을 현장에 투입해왔다. 하지만 그들에게 준전시 상황과 같은 군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군 대체복무 중인 공보의들은 아무래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현재 복지부 공무원들은 잠도 못자고 전원 투입 체제인데, 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강요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 인력 구조로는 메르스 이후 다른 신종 감염병이 발생해도 같은 문제가 재연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보건복지부의 실장급(1급) 4명 중 의사 출신은 단 1명도 없다. 보건의료정책실 소속 국장(2급) 3명 중 보건 전문가는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 1명뿐. 심지어 건강정책국장도 비보건 전문가다. 질병정책과, 응급의료과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요직도 비의료인 출신이 맡고 있다. 보건 없는 보건복지부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복지부의 외청에서 독립한 식품의약품안전처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식약처는 처장, 차장을 포함해 국장급 이상 총 11명 중 9명이 식품과 의약품 전문가다. 식품과 의약품을 다루는 식약처도 독립된 길을 가고 있는데….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보건 분야를 처로 격상시켜 독립시키거나 보건복지부 내 2차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메르스는 면역력을 갖춘 어른에겐 ‘감기’ 정도의 가벼운 질병일 수 있다고 아무리 정부가 설파해도 국민들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보건 전문 행정가의 부재는 그래서 더 아쉽다. ―세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