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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부형권]체험적 용미론(用美論)

입력 | 2015-06-08 03:00:00


부형권 뉴욕 특파원

“미국은 잘 차려 놓은 밥상이다. 숟가락 들고 앉아서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다.”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사는 세계적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55)에게서 들은 말이다. 남북통일의 꿈을 담은 지름 250m의 세계 최대 원형 다리를 임진강에 세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그의 용미론(用美論)은 이어진다. “풍부한 자원, 드넓은 시장,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의 건설적 기여 등 한국과 한민족이 미국을 잘 이용해 먹을 일은 너무 많다. 이 풍요로운 밥상을 외면하거나 걷어차는 사람(나라)만 손해다.”

강 작가를 만난 날(3월 10일) 차이나타운을 몇 시간 같이 걸으면서 든 생각은 ‘미국 밥상에 숟가락 들이대는 중국 기세가 무섭구나’이다. 많은 재미동포들은 “중국 사람과 돈(투자)의 미국 내 유입이 거의 인해전술 수준”이라고 말한다. 뉴욕 퀸스 플러싱 같은 대표적 한인 상권 지역도 차례로 차이나타운화(化)하고 있다. 미 인구센서스국에 따르면 중국계 미국인은 401만114명(2010년 기준). 아시아계의 25.2%다.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도 33만1371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29.3%. 2위(인도·14만6336명·12.9%)의 2배가 넘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걱정하면서 ‘중동으로 진출해 보라’고 했다가 젊은이들이 ‘니(네)가 가라, 중동’이라며 반발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중동 가지 말고 전부 미국으로 오세요.” ‘50대 후반’인 뉴저지 한인 택시 운전사의 말이다. 고교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있다는 그는 “미국에선 가슴에 꿈 하나만 남겨 두고, 체면 자존심 다 버리면 먹고산다”고 했다. 그와 네일숍에서 일하는 부인의 꿈은 ‘자식 공부 잘 시키는 것’. 그는 택시에서 내리는 기자에게 “남한 5000만 인구가 다 와도 미국 사람들은 눈치도 못 챌 겁니다. 하도 넓어서…”라고 했다. 미국 면적(982만6675km²·중앙정보국·CIA 자료)은 남한(9만9720km²)의 98.5배지만 인구(3억1889만2103명)는 남한(4903만9986명)의 6.5배에 불과하다.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한국 국익을 위해 활용하자’는 의미의 용미는 친미(親美) 아니면 반미(反美), 반미 아니면 친미로 규정당하던 1980년대 ‘제3의 길’로 제시됐다.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가 앞장서 설파했고 기자도 그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외교부를 출입하면서도 ‘용미’를 체감한 적은 매우 드물다. 21세기 노무현 정부 때도 ‘동맹파 대 자주파’ 대립이 있지 않았나. 요즘은 ‘친미냐 반미냐’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지로 건너뛴 느낌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 내 한인 상권은 중국에 뺏기고, 좋은 일자리는 인도(전문취업비자·H-1B의 약 70% 차지)가 다 가져간다. 한국의 전문직 인력 1만5000명에게 취업비자 ‘E-4’를 제공한다는 ‘한국과의 동반자 법안(HR1019)’은 2년이 넘게 의회에서 잠자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숟가락(취업비자)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인 유학생들은 진수성찬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속속 귀국한다. 유학생 수마저 지난해 9만1693명에서 올해 8만7384명으로 4309명(4.7%) 줄었다. 중국 인도 유학생의 증가세와 대조된다.

메르스 사태가 악화하면서 야당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 방미(14∼19일)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고 들었다. 재미동포와 유학생들의 ‘체험적 용미론’을 접한 기자는 박 대통령이 미국 밥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챙겨갈지 무척 궁금하다. 그 용미 결과가 ‘냉정한 방미 성적표’가 될 것이다.

부형권 뉴욕 특파원 bookum90@donga.com